이라크에 지쳤나… ‘순한 양’ 미국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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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의 초강대국이란 자신감의 산물인 이라크전쟁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게 해 준 계기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요즘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정책 관련 콘퍼런스에선 이런 뉘앙스의 표현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현상을 ‘자초한 임포텐스(self-inflicted impotence)’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최근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현실주의 온건노선으로의 변화 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싸울 기력’은 오로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문제에만 집중하려는 듯 그 밖의 외교적 논란들에선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는’ 자세가 뚜렷하다. 강경 일변도였던 이란 핵문제에 대해서도 변화의 조짐이 희미하게 일고 있다.》

▽‘자초한 무기력’의 사례=미 국방부가 지난달 26일 공개한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의 올 연초 보고서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미군이 또 다른 위기 발생 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실패한 이라크전쟁의 여파로 미국은 외부의 자극이 타당성이 없어도 공격적으로 맞대응할 능력을 잃은 것 같다”며 “이는 일종의 자초한 성적 무기력”이라고 비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잇따른 미국 비판 발언, “폴란드와 체코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를 받아들인다면 러시아가 폴란드와 체코의 미사일 시설을 공격 목표로 삼을 수도 있다”는 러시아 전략미사일부대 사령관의 발언, 이를 두둔하는 듯한 독일 외교장관의 발언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유순하고 뜨뜻미지근한’ 대응을 지적한 것이다.

▽이란, 시리아와의 대화 물꼬=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27일 상원에서 “이라크의 장래를 논의하기 위한 국제회담이 다음 달 열리며 미국도 참여한다”며 “여기엔 이란과 시리아 대표도 초청됐음을 주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회담은 이란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및 주변국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아랍연맹, 이슬람회의기구 관련국들이 참여하는 이라크전 개전 이래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라이스 장관은 또 “4월엔 이 회담 참여국에 더해 G8(선진 7개국+러시아) 각료들이 참여하는 장관급 회담이 열린다”고 밝혔다. 3월 회담은 대사급이, 4월 회담은 라이스 장관이 참여할 예정이다.

물론 초청 주체는 이라크 정부지만 이란 시리아와의 접촉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에서 미국 언론은 “북핵 베이징(北京) 합의에 이은 부시 행정부 정책의 변화”라고 분석했다.

▽선(先)논리 전환부터=이에 앞서 라이스 장관은 25일 팍스뉴스와의 회견에서 “미국은 이란의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추구하는가, 아니면 ‘행동의 변화(behavior change)’를 추구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란이 핵 야망을 포기하면 그들은 국제 공동체로 다시 들어올 수 있고 교역을 포함한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권 교체’에서 ‘행동의 변화’로의 논리 전환은 부시 행정부 내 협상파 인사들이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자주 동원한 바 있다.

여전히 한쪽에선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지난주 딕 체니 부통령)며 군사력 동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발언이 나오고 이에 맞서 “이란 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핵시설을 폭격한다는 건 실효성이 없으며 미국은 그런 정보 역량도 갖고 있지 못하다”(레이 타게이흐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는 반론이 곧바로 나오는 것도 수년 전 북핵 6자회담이 본격화되기 직전의 상황과 닮았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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