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니 철통보안 속 아프간 갔는데…일정 미룬 새 ‘노출’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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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27일 자국을 방문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27일 자국을 방문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여기를 떠나는 것도, 어디에 가는지도, 다음 목적지가 어딘지도,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지도 절대 발설해선 안 된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예고 없는 오만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문을 동행한 기자들에게 주어진 지침이었다. 비밀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모든 기자가 취재에서 배제되며 각자 오직 배우자와 직장 상사 1명에게만 얘기할 수 있다는 조건도 덧붙여졌다. AFP통신은 지난달 27일 체니 부통령의 ‘깜짝 중동 순방’이 이처럼 철저한 보안 아래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체니 부통령은 공군 2호기의 안락한 스위트룸마저 포기하고 수송기 안에 설치된 트레일러에 몸을 실어야 했다. 공군 2호기가 귀국 항로가 아닌 싱가포르에 기착한 사실이 노출되면서 그의 오만행이 알려진 뒤 안전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은색 탄환(Silver Bullet·만반의 대비책을 일컫는 말)이란 별칭을 가진 12m 길이의 트레일러는 C-17 공군 수송기 내부 바닥에 체인으로 고정됐고 전기선과 통신선이 연결됐다. 눈에 띄는 공군 2호기 대신 수송기를 이용하기 위해 급조한 VIP용 객실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선 이 같은 철통 보안도, 위장 장치도 어쩔 수 없었다.

26일 수송기 편으로 파키스탄 방문 일정을 마치자마자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에 도착한 체니 부통령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카불로 직행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눈보라 때문에 일정을 연기하고 하룻밤을 기지에서 지내야 했다. 일정이 지연되면서 보안은 새 나갔고 체니 부통령은 27일 아침 자신을 노린 폭탄 공격의 현장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

체니 부통령은 강력한 폭발음을 들은 뒤 경호원들에 이끌려 잠시 방공호에 대피해야 했다. 그는 ‘폭탄 공격 후 일정을 취소하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다행히 별 사고 없이 오만으로 되돌아온 체니 부통령은 별도의 욕실과 접이식 취침용 소파가 갖춰진 공군 2호기로 갈아타고 ‘안락한’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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