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유 춘제전통 간직한 장쑤성 시골 마을 가보니…

  • 입력 2007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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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제(설날)를 하루 앞둔 17일 중국 장쑤 성 하이안 현 취탕 진 룽츠 촌의 주민 루원밍 씨가 향을 사른 뒤 천지신명에게 절을 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제사 지낼 때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무릎 위까지 위아래로 흔들며 절을 해 무릎을 꿇는 우리와는 다르다. 하이안=하종대  특파원
춘제(설날)를 하루 앞둔 17일 중국 장쑤 성 하이안 현 취탕 진 룽츠 촌의 주민 루원밍 씨가 향을 사른 뒤 천지신명에게 절을 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제사 지낼 때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무릎 위까지 위아래로 흔들며 절을 해 무릎을 꿇는 우리와는 다르다. 하이안=하종대 특파원
《중국인은 설을 어떻게 쇨까.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 중국 설인 춘제(春節)도 점차 원형을 잃어 간다. 이를 비교적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은 농촌지역이다. 베이징(北京)에서 3000리 떨어진 장쑤(江蘇) 성의 시골 마을을 찾았다.》

그믐날 저녁 소원 빌며 제사
“재앙 퇴치” 엿새간 폭죽잔치

▽기차표 30분 만에 ‘동났다’=당초 기차를 타려 했지만 표를 구하지 못해 포기했다. 베이징 역에 일찌감치 나가 앞에서 17번째로 줄을 섰지만 역무원은 표를 팔기 시작한 지 30분도 안 돼 표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설 연휴를 전후한 귀성 인파가 5억 명이 넘는 데다 암표상들이 미리 사 간 것이 표를 구하기 힘든 원인인 듯했다. 중국 정부는 설 연휴 특별수송기간(이달 3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40일간) 전국의 ‘설 이동 연인원’이 21억6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16일 밤 비행기로 상하이(上海)에 내리니 이번엔 장거리 버스 좌석도 매진이다. 그래도 중국엔 방법이 있다. ‘뒷거래’로 간이의자에 앉는 표를 구했다. 17일 아침 상하이를 출발해 서북쪽으로 350km를 달린 뒤 무허가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8km를 더 가서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틀 만에 도착한 곳은 장쑤 성 하이안(海安) 현 취탕(曲塘) 진 룽츠(龍池) 촌. 이곳은 사방을 둘러봐도 논밖에 없다. 해가 논에서 떠서 논으로 진다.

촌민이 1070가구 3201명인 곳이다. 농가당 연간 수입은 1만5000위안(약 180만 원). 쌀농사와 보리농사를 하고 양잠도 한다. 농사를 해서 얻는 수입은 5000위안에 불과하며 1만 위안은 도시로 나가 막노동을 해 버는 돈이다.

▽천지가 폭죽 소리, 화약 냄새=본격적인 춘제 행사는 온 가족이 모여 그해의 마지막 저녁식사인 ‘녠예판(年夜飯)’을 먹는 것부터 시작한다. 저녁식사에 앞서 집집마다 거실 중앙에 꾸며 놓은 ‘중탕(中堂)’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낸다. 도시에서는 이런 제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제사상에는 새해 평안하게 해 달라는 뜻으로 사과를 올린다. 핑궈(평果)로 불리는 사과의 머리글자 발음이 핑안(平安)과 같기 때문이다. 남방에서 만터우(饅頭)라고 불리는 팥이 든 호빵, 밥 대신 칼국수가 제사상에 올랐다.

제사에서 절하는 방식은 특이하다. 천지신명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올렸다 내리면서 얼굴을 함께 숙인다. ‘쭤이(作揖)’라고 불리는 이 동작을 3번 한다. 폐암을 앓고 있는 루원밍(陸文明·54) 씨는 건강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제사가 끝나면 폭죽을 터뜨린다. 볜파오(鞭포)라고 불리는 폭죽은 터지는 유형에 따라 옌화(煙花), 파오쭈(포竹), 다볜(大鞭) 등 다양하다. 폭죽을 터뜨리는 이유는 어린이와 가축을 해치는 ‘녠(年)’이라는 괴물이 동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전설이 있다.

섣달그믐 밤 제사가 끝난 뒤 터뜨리기 시작해 밤 12시에 절정에 이르는 폭죽은 원래 정월 초하루엔 식사 전마다, 초이틀부터 초닷새까지는 아침식사 전에 터뜨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믐날 저녁부터 초닷새까지 밤에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터뜨린다.

설날엔 풍년을 기원하며 토지 신에게도 제사를 지낸다. 투마오(土廟)라고 불리는 서낭당에서 향을 사르고 땅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3번 한다.

▽농촌도 정치토론 ‘눈길’=새해 첫날 만난 동네 아저씨와 루 씨는 한담을 나누다 얘기가 정치로 옮겨갔다. 루 씨가 “후진타오(胡錦濤) 지도부가 농촌을 중시한다”고 하자 동네 아저씨는 “공산당이 썩었다. 예전엔 안 그랬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예전엔 절대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농민도 도시로 나들이를 하면서 깨어가고 있는 것이다.

황젠화(黃建華·38) 촌장은 “의료비와 도로포장 문제가 농민의 가장 큰 문제”라며 “올해 상반기 마을 안길 포장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말했다.

▽“한국, 모두가 잘 안다”=룽츠 촌 사람 중 한국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이안 현에는 이미 한국 중소기업이 들어왔고 가족이나 친척, 친구 중 적어도 한 명은 한국 기업에서 일하거나 거래하고 있었다.

2000년에 시작된 외자기업 유치 정책 덕택에 모자와 신발을 생산하는 성보모업 등 한국 기업 3, 4개사가 벌써 진출했다.

18일 밤 난징을 거쳐 베이징으로 돌아오면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광활한 중국 전역이 밤새 터뜨리는 폭죽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이안=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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