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교수, 왕가 정통성에 도전 ‘파문’

  • 입력 2007년 2월 6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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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전통주의로 불리는 와하비즘(Wahhabism)의 창시자 무하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1703∼1792)는 이슬람교의 정화를 위해 과거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엄격한 코란 해석을 통해 이슬람교의 순수성 회복을 촉구했다.

이후 와하비즘은 사우드 가문이 아라비아에 통일 왕국을 건설하면서 내세운 건국이념이었고 여전히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가이념이다. 정교일치의 사우디 왕국에서 와하비즘 외의 다른 해석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한 사우디 지식인이 이에 도전하며 외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4일 보도했다. 그 주인공은 킹사우드대의 할리드 알다힐(54) 교수.

알다힐 교수는 와하비즘이 순수한 종교운동이 아니며 오스만 제국 아래 12개 도시국가로 갈라져 있던 아라비아에 단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운동이었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적 담론을 이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알다힐 교수는 민감한 왕위계승 문제도 건드렸다. 두바이의 ‘포브스 아라비아’에 “왕족 원로그룹만 참여하는 왕위계승자 선정에 서방의 의회 격인 자문위원회(슈라)가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그의 주장은 사우디의 금기를 깬 최초의 내부 목소리. 더욱이 사우디 왕가가 역시 와하비즘에 뿌리를 둔 알 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으로 인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형국에서 나왔다.

사우디 왕가가 가만있을 리 없다. 알 이티하드 신문사는 그의 세 번째 칼럼이 나가기 직전 알다힐 교수에게 ‘무기한 휴가’를 요구했고 잡지 ‘포브스 아라비아’는 검열관에 의해 그의 칼럼이 찢긴 채로 반입됐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사우디 일각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한 웹사이트에는 알다힐 교수에 대한 ‘재갈’을 풀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청원서 양식이 게재됐고 ‘사우디 디베이트’ 웹사이트에서는 토론도 벌어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진 공연한 말썽을 일으킨다는 비난이 많은 게 사실이다. 사우디 사람들은 그토록 신봉해 온 와하비즘을 깎아내리는 듯한 그의 주장에 분개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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