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연설에서 엿본 미국의 북한정책

  • 입력 2007년 1월 24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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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실시한 23일 연두 국정연설은 부시 행정부가 당분간은 한반도 정책을 '잡음 없이 끌고 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밤 워싱턴 의사당에서 60분에 걸쳐 550줄 분량의 긴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북한을 거론한 부분은 단 한 문장. 그는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의 파트너와 함께 집중적인 외교노력을 추구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2001년 취임한 부시 대통령은 2002년을 시작으로 6년째 국정연설을 했다. 그러나 올 연설에 담긴 북한관(觀)은 표현이 짧고, 긍정적 외교노력이 거론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연설을 들은 한 외교관은 "비판적인 표현을 쓰지 않기로 작심한 게 보인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을 다룬 외신기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빠른 해결을 희망했다"(AFP)는 정도의 분석만 눈에 띄었다. 북한 말고도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나, 쿠바 짐바브웨의 독재정권 이야기도 "뺄 수 없어서 넣었다"는 인상을 줄 만큼 최소한만 언급됐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 최악의 지지율(35%)을 고려할 때 '낮은 포복'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그의 '수사학'을 통해 대외정책을 가늠해보는 방향타나 다름 없었다. 2002년 연설에서 이라크 이란 북한을 묶어서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묘사했을 때도 안보전문가들은 이라크 전쟁이 임박했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지지율이 50%를 넘었던 집권 1기에 한 국정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북한관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평양정권을 묘사하면서 '악의 축, 무법자 정권'(outlaw regime·2003년), '위험한 정권'(dangerous regime·2004년)이라는 자극적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했다.

당시에 비할 때 표현부터 한 발 물러선 부시 대통령의 '북한 핵 숨고르기'는 진행 중인 북미 간 의기투합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2002년 10월 2차 핵 위기가 터진 이후 4년 내내 맞서온 두 나라는 베를린 회동을 기점으로 '합의도출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최근 "북미 양국이 상호 양보를 통해 '작은 것'에 합의하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상호불신이 깊은 만큼 큰 타협은 어렵지만 작은 합의 도출을 통해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런 차분한 북한정책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다른 소식통은 "향후 6자회담에서 금융제재 해제 및 영변 핵시설 동결과 같은 방식의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실제 이행과정에서 드러나는 북한의 핵 포기 의지에 의구심이 생길 경우에는 얼마든지 강경한 원칙으로 되돌아갈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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