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주고 약주는 게이츠 자선재단

  • 입력 2007년 1월 9일 03시 01분


코멘트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2000년 부인과 함께 설립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게이츠재단)은 지난해 말까지 빈국 의료 지원에 2억1800만 달러를 쏟아 부으며 질병 퇴치에 앞장섰다.

그러나 같은 기간 중 게이츠재단은 석유, 화학, 제지 등 각종 공해 배출 산업에도 4억23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결과적으로 게이츠재단의 지원을 받는 수혜자들이 재단이 투자한 회사의 비윤리적 경영행위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이율배반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대형 자선재단의 경영구조는 크게 투자와 자선사업으로 나뉜다. 재단은 매년 총자산의 5∼10%를 자선사업에 쓰고 나머지는 투자를 해서 기금을 불려 나간다.

지난해 6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310억 달러를 보태 자산이 659억 달러로 불어난 게이츠재단은 막대한 운용 자산만큼 투자하는 기업도 수백 개에 이른다.

게이츠재단의 경영 상태를 알기 위해 90여 명을 인터뷰하고 수백 건의 내부 자료를 분석한 이 신문은 재단 운용자산의 41%가 환경오염, 고용 차별, 가격 조작 등 비윤리적 행위를 하는 기업에 투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선 목표와 비윤리적 투자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두 사업 간에 ‘방화벽’이 설치돼 있기 때문. 게이츠재단은 얼마 전 투자사업부를 아예 ‘게이츠재단 신탁’이라는 별도의 기구로 독립시켰다. 자선사업과 교류가 단절되다 보니 투자 결정은 수익 최대화 원칙에 좌우되기 쉽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그러나 투자연구단체인 내추럴 캐피털 연구소(NCI)의 폴 호킨 연구원은 “대형 자선단체들에 투자와 자선의 모순은 ‘더티 시크릿(더러운 비밀)’에 속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게이츠재단 같은 대형 자선재단들이 ‘윤리적 투자(ethical investment)’에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윤리적 기업에 투자할 뿐만 아니라 주주로서 이런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압력을 넣는데도 소홀한 것은 자선분야에서 게이츠재단의 절대적인 위치를 고려해 볼 때 일종의 ‘직무 유기’라는 것이다.

이 신문은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자선재단으로 자산 2위의 포드 재단을 비롯해 록펠러 재단, 존 앤드 캐서린 맥아더 재단을 꼽았다.

록펠러 재단의 더글러스 바우어 선임 부사장은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기업의 투자 수익률은 일반 기업보다 낮다는 일부 자선재단의 주장과 달리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게이츠 재단이 좀 더 자선 목표에 부합하는 투자 결정을 내린다면 자선업계에 마치 지진과도 같은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