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추억… 조국은 國葬도 거부했다

  • 입력 2006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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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군부독재의 상징적 인물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이 10일 심장질환 합병증으로 산티아고 국군통합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91세. 장례 절차는 국장(國葬) 대신 군장(軍葬)으로 치러진다. 피노체트 집권 시절 고문 피해를 겪은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국장에 반대했다. 피노체트 전 대통령은 인권유린의 바탕 위에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민주화 이후 그 대가를 치러야 했던 냉전시대 군부독재자의 전형이었다.》

그는 1915년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적 부진과 체력 미달 등의 이유로 2번 낙방한 끝에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워싱턴 주재 칠레대사관 무관을 지낸 그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못했다. 그런데도 강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군 총사령관까지 진급했다.

그는 1973년 유혈 군사쿠데타를 통해 살바도르 아옌데의 마르크스주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후 파산 직전에 처했던 국가를 경제성장의 길로 이끌었으나 그의 철권통치에 의해 3200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수천 명이 고문을 당했다.

피노체트 전 대통령은 1990년 선거에 패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1998년까지 군 총사령관 직을 유지하면서 민선정부에 거부하기 어려운 압력을 행사했다.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 변화 움직임에 경고를 보냈고, 부하들이 인권유린 혐의로 사법 처리되는 것을 방해했다.

그의 몰락은 1998년 영국 런던에서 전격 체포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국내외에서 자신의 집권기간 인권유린 혐의로 가택연금과 기소를 쉴 새 없이 당했다. 2005년에는 그가 해외 비밀계좌에 수천만 달러를 갖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국민의 환멸을 샀다.

한편으로 그는 칠레에 자유시장 경제를 확립하고 칠레를 중남미의 가장 부유한 나라로 변화시켜 국제사회에서 ‘주저 섞인’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시카고 보이스’라고 불린 미국 시카고대 출신 기술관료의 건의를 받아들여 무역 장벽을 철폐했고 수출 증대를 장려했으며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정부 간섭 없이 중앙은행이 금리와 환율을 결정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한 자유경제의 십자군으로 자처했던 피노체트 전 대통령은 인권유린을 포함한 자신의 재평가가 진행되면서 “내가 지나쳤다면 신이 용서할 것”이라며 자리에서 물러서야 했고 측근들에게는 “죽고 싶다”며 자괴감을 표할 정도였다.

결국 그는 지난달 ‘정치적 책임’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했고 91세 생일을 맞은 지 얼마 안 돼 눈을 감았다.

피노체트 전 대통령의 사망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더불어 20세기를 넘어 생존한 냉전시대 중남미 좌우파의 두 대표적 인물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말기암을 앓는 카스트로는 1959년 집권 이후 47년 만인 4개월 전 이미 권력을 이양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서구언론 “법정 세웠어야 하는데” 싸늘▼

독재자를 떠나보낸 자리에는 환호가 가득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칠레 국민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 행진을 벌여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AP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산티아고에는 시민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추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국기를 흔드는 등 과거 군부독재 유산으로부터 ‘칠레의 해방’을 축하했다.

피노체트 집권 시절 고문당했던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10일 “장례는 국장으로 치르지 않을 것이며 3일간의 공식 애도 기간도 없다”고 밝혔다.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의 지위를 전직 군 참모총장으로만 인정해 군 시설의 조기 게양은 인정하기로 했다.

한편 피노체트 지지자들은 그가 사망한 산티아고 군병원 밖에서 그의 초상화를 내걸고 추모 행사를 열었다.

미국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피노체트 독재 시절은 칠레 역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 가운데 하나”라며 “피노체트 집권 시절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피노체트 집권 기간의 평가를 유보했지만 1980년대 피노체트와 함께했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조의를 표했다.

영미권의 다수 신문은 “피노체트가 죽음으로 기소를 피할 수 있었다”며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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