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혼자선 이라크 정상화 못 시킨다”

  • 입력 2006년 12월 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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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스터디그룹 보고서, 부시 정책 실패 결론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전쟁 정책을 혹독하게 비판한 ‘이라크스터디그룹(ISG) 보고서’가 공개된 6일(현지 시간) 백악관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ISG 보고서는 160쪽 곳곳에서 부시 대통령의 외교철학을 부정하는 듯한 표현을 담았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틀라는 결론이었다.》

▽냉정한 진단=우선 보고서는 수니-시아파 간의 내전상태를 방불케 하는 이라크 상황을 “엄중하고 위태롭다”고 규정했다. “절대적으로 이기고 있다”던 부시 대통령의 부정확한 상황인식을 꼬집은 것과 다름없다. 이라크 현실을 솔직히 인정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내정자는 이날 찬성 95, 반대 2라는 압도적 지지로 상원에서 인준됐다.

또 보고서는 최강대국 미국이라도 ‘혼자서, 힘으로’는 이라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힘으로 세계의 도덕적 선을 구현해야 한다’는 네오콘(신보수주의) 외교철학에 사망선고를 내린 셈이다.

이 밖에 이라크 정치인의 적극 개입을 통한 ‘이라크 자결원칙’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고 부시 행정부가 외면하던 이란과 시리아 등 주변국과의 공동노력도 촉구했다. 이 보고서는 구속력이 없는 권고안이다. 그렇다고 보고서의 정책제안을 무시할 수만도 없다.

ISG는 공화·민주당 출신 명망가 10명이 참여해 9개월간 활동했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제임스 베이커 씨가 간판주자로 나섰다.

▽시큰둥한 반응=최대 관심은 부시 대통령이 제안을 얼마나 수용할지, 그래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이 얼마나 달라질지에 모아진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아침 백악관을 방문한 ISG 구성원들에게 “감사하다. 겸허하게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언론은 ‘단순한 감사표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참고는 하지만 결론은 자체적으로 내린다’로 백악관 기류를 정리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보고서 내용은 빌려올 수 있지만 해법은 직접 찾는다”고 밝혔다. ISG 외에 합동참모본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도 이라크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단계다.

권고안 중 특히 논쟁거리는 ‘2008년 3월 말’로 못 박은 시한이다. 이 구절은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 씨가 삽입을 관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라크 현지 사정에 민감한 국방전문가에게서 반론이 나왔다. 잭 킨 전 육군참모총장은 미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워싱턴 정치인의 책임회피일 뿐 전쟁터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3년 반 동안 치안유지에 실패했는데 1년 3개월 동안 어떻게 이라크의 자체 치안능력을 확충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미 대통령의 선택은=부시 대통령의 결단이 임박했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우선 중간선거 패배(11월 7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경질(11월 8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내정자 청문회(5일), ISG 보고서 채택(6일)으로 이어지는 최근 1개월은 부시 대통령을 ‘정책 수정’이라는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민주당 분석가들은 “민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시 대통령이 민주당에서조차 불만스러운 이 정도의 대안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일단 7일 워싱턴서 열린 미영 정상회담의 결과가 ‘부시호(號)의 앞날’을 진단하는 데 중요한 풍향계가 될 듯하다. 양국이 전쟁의 최초 기획국이란 점에서 심도 있는 방향설정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미 CNN방송의 래리 킹 라이브에 나와 “연말까지는 부시 대통령이 새 이라크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어떤 식이건 전쟁비용이 1조 달러(약 920조 원)나 추가로 소요될 것이란 전망은 ‘레임덕의 가속화’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부시=이라크전쟁’이라는 공식이 세워진 마당에 보고서가 전쟁의 명분과 현실성을 모두 약화시켰다는 점에서도 힘 빠진 부시 대통령을 예상하긴 어렵지 않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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