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분노의 大選

  • 입력 2006년 11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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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보졸레 누보가 맥을 못 췄다. 수년 전부터 11월 셋째 주 목요일만 되면 갑자기 프랑스의 사촌이라도 되는 듯 수입업자 판매상 주당이 한통속이 돼 설쳐 대더니 이번에는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언론도 보졸레 누보 출시 대신 같은 날(16일) 프랑스에서 있었던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에 훨씬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제대로 된 것이다. 아무렴, 프랑스 와인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치는 보졸레 누보보다는 프랑스 최대 야당의 대선 후보에게 관심을 기울여야지. 지금이야말로 포도주에 취하는 대신 어떤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국이 다시 용틀임을 할 수 있을지, 외국 사례까지 놓치지 않고 살펴 교훈을 얻어야 할 때다.

한국과 프랑스의 닮은꼴 선거

프랑스 대선은 차기 한국 대선과 닮은꼴이다. 우선 내년에 실시되며 대통령 임기가 5년이라는 점이 같다. 양쪽 다 야당 유력 후보에 여성이 끼어 있다. 현직 대통령이 죽을 쒀 정권 교체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닮았다. 르몽드의 지적처럼 대다수 국민이 현 정권에 대해 ‘부정적이고, 분노하고, 불만으로 가득 차고,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심정인 것도 흡사하다.

그런 까닭에 현명한 한국인이라면 프랑스 대선 추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8개월 앞서 내년 4월 대선을 치른다. 비슷한 조건이니까 프랑스의 경험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리게 된 우리가 더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욕심까지 낼 만하다.

프랑스보다 못할 이유도 없다. 1996년 대우가 프랑스 가전업체 톰슨멀티미디어를 매입하려 했을 때 프랑스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 후진국에 프랑스 전자산업의 상징인 톰슨을 매각하는 것은 치욕이라고 떠들었다. 결국 매각은 무산됐다. 그로부터 10년, 상황이 크게 변했다. 프랑스 통상 관련 장관들이 잇달아 서울로 찾아와 한국의 투자를 호소하고 있다.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은 프랑스가 한국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인들의 입에서 한국의 수준을 경멸한 데 대한 반성이 터져 나왔다.

정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대통령 선택도 프랑스 못지않게 할 수 있다.

사회당 후보가 된 세골렌 루아얄 씨의 언행은 우리에게 이미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그는 “세상이 변하고 프랑스도 변했으니 정치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당 정부가 도입한 주35시간 근무제까지 변화 대상으로 삼고 있다. “변화를 구현하되 국민과 함께하겠다”며 국민을 이해하려 하고 그들의 말을 듣기 위해 애쓰는 그에게 사회당원들은 몰표를 던졌다.

내년 1월 집권 여당의 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직설적이고 자신만만하다. 불어나는 이민자에 대한 반감, 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강경 대응이 그의 무기다. 노동자 보호와 과도한 사회보장을 택한 프랑스 경제체제는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는 질타도 서슴지 않는다.

‘대한민국 만세’를 위하여

사회당 후보는 정해졌지만 좌우파 모두 후보가 난립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사르코지 장관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아직 출마 포기 선언을 하지 않았다. 3선 도전은 않더라도 킹메이커 카드는 쉽게 놓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이 퇴임 이후를 고려해 시라크 대통령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있으니 이 또한 남의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고려하고 평가할 요소들이다. 누구의 언행과 공약이 권력을 잡기 위한 술수인지, 누구의 주장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프랑스를 타산지석 삼아 내년 대선이 끝난 뒤 프랑스의 ‘비브 라 프랑스(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보다 한국의 ‘대한민국 만세’ 소리가 더 우렁차기를 고대한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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