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섹 "한국, 일본식 '잃어버린 10년' 위기 봉착"

  • 입력 2006년 11월 14일 14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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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경제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해지면서 일본의 발목을 잡았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월가의 저명한 경제전문 칼럼니스트가 진단했다.

윌리엄 페섹은 14일 '한국, 일본식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위험 직면'이란 제목의 블룸버그 통신 기명 칼럼에서 한국이 중국 붐과 일본 경제 회생이란 주변의 압박과 함께 원화 가치 상승, 고유가 및 부동산 투기로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정책마비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페섹의 칼럼을 간추린 것이다.

<2001년만 해도 일본과 한국 경제를 비교할 때 역내 1위 경제국인 일본이 3위 경제국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한국은 1998~99년의 외환위기에서 급속히 빠져나온 반면 일본은 디플레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 경제는 회생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주춤하고 있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은 올해도 5% 가량의 성장이 전망되는데 반해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이 고작해야 한국의 절반 수준 밖에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의 코스피 지수도 올해 달러 기준으로 9.4% 상승해 일본 닛케이 225 지수가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한 것과 대별된다. 또 원화는 8% 가량 가치가 뛴데 반해 엔은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경제를 어둡게 짚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8~10% 고속 성장을 하다가 4% 수준으로 떨어지면 마치 침체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 수준과 근로의욕이 높고 기업의 대외 경쟁력이 강하며 역사적으로 변화에도 쉽게 적응하는 한국이지만 하이테크의 일본과 저비용의 중국에 끼여 있는 것이 불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 규모 7930억 달러의 한국이 전례없는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북한의 핵 야욕도 부담을 크게 하는 요소임이 물론이다.

한국이 외환 위기를 극복한 후 세계의 투자자와 기업인,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은 한국시장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은행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외채를 줄이는 한편 외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2001년 일본은 그렇지가 못했다.

한국은 외환위기 와중인 98년 6.9%로 위축됐던 성장을 그 이듬해 9.5%로 회복시킨 후 2001년 3.8%로 급락하기는 했으나 2002년 7%로 다시 끌어올리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 기간에 코스피 지수도 145% 상승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급변했다.

원화 강세와 고유가, 그리고 부동산 투기가 아주 나쁘게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일본을 지난 90년대 괴롭혔던 것과 아주 흡사한 늪에 빠질 위험에 봉착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주택시장 거품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입에서는 "집값 상승이 걱정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국적으로 아파트 값이 지난달에만 전달에 비해 1.5%나 뛰었다. 2003년 10월 이후 최대 월간 상승폭이다.

부동산값 폭락은 경제에 치명타이다. 더욱이 중국이 과열 성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하고 미국 역시 수요가 둔화되는 타이밍도 나쁘다.

그렇다고 한국이 과거의 일본처럼 된다고 경제학자들이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크다.

권위를 인정받는 홍콩 애널리스트 앤디 셰(사국충)는 "구조적으로 한국이 일본 신드롬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살얼음을 밟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경제가 업그레이드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더 이상 중국에 대해 효율성에서 앞서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경쟁력에서 앞서온 전자와 자동차 쪽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아마도 정책 마비(policy paralysis)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이후 경제에서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낮은 지지율과 대선을 앞둔 내분 등은 현 정부가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데 필요한 만큼 (정책을)조율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한국의 성장이 4% 수준으로 위축됐다고 하지만 선진 7개국(G7)에 비하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도 생활 수준을 높이고 외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일본이 현재 낫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따라야할 모델까지는 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고용 창출보다는 고용 보장이 절박한 상황이다. 여기에 인구까지 줄어들고 있다. 공공 부채가 여전히 과다하며 저금리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부담은 이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을 자랑할 수도 있지만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는 아시아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한국은 아직 한국경제를 얕보지 말도록 세계를 상기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또한 정부가 만약에 현재의 경제성장 잇점을 활용한다면 일본의 90년대 경험이 되풀이되는 것을 피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것이 실현가능성이 별로 없다(big if)라는 것이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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