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아버지 노선으로 회귀? 美 공화당 신주류는 ‘파더 콘’

  • 입력 2006년 11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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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포스트의 12일자 만평.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시 측근이었던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내정자를 옆에 두고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볼기를 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중간선거 패배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방 맞은 것 같다(thumping)”고 했지만 아버지에게 다시 한방 맞아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만평가 톰 톨스의 촌평은 이렇다. “좀 늦었어.” 사진 출처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12일자 만평.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시 측근이었던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내정자를 옆에 두고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볼기를 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중간선거 패배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방 맞은 것 같다(thumping)”고 했지만 아버지에게 다시 한방 맞아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만평가 톰 톨스의 촌평은 이렇다. “좀 늦었어.” 사진 출처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
미국의 대외정책 노선은 정말로 항로를 바꿀까.

‘11·7 중간선거’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힘의 외교’에서 ‘아버지 부시’ 시절의 외교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관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버지 부시 인맥이 아들 행정부의 구조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라크 문제에 관한 한 이데올로기(이념)에 대한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의 승리로 비친다.”(뉴스위크)

“초기 공화당 외교정책으로의 회귀다.”(뉴욕타임스)

“네오콘(신보수주의)에서 ‘파더콘’(father-con·아버지 시절 보수주의)으로의 회귀”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내정자가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절 현실주의 노선을 걸었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국가안보보좌관 아래서 2년간 부보좌관을 지냈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역시 당시 게이츠 부보좌관 아래서 러시아 담당으로 일했던 온건 보수파라는 점을 들어 앞으로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무부가 주도하고 국방부와 국가안보회의(NSC) 내의 온건 보수파들이 밀어주는 구도가 형성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게이츠 장관 내정자가 이란 핵문제와 관련해 2004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끄는 연구팀에 합류해 이란과의 직접 대화를 주장했음을 들어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직접 대화론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부시’ 시절인 1989년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 체포를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했던 파나마 침공 사례를 들며 대외정책의 질적 변화를 예상하는 것은 단견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불칸집단의 패권 형성사’의 저자인 제임스 만은 최근 칼럼에서 “19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놓고 행정부 내에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매파의 선봉은 게이츠 안보 부보좌관이었고, 게이츠 부보좌관을 적극 지지한 사람은 바로 딕 체니 국방장관이었다”고 지적했다. 국방장관 경질은 이라크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아들이 매일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건다”고 말한다. 일부 소문처럼 부시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외정책, 특히 이라크 문제에 있어선 부자가 큰 차이를 보여 왔다.

특히 네오콘들은 “1991년 제1차 이라크전(걸프전) 당시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지 않고 전쟁을 중단함으로써 쿠르드족에 대한 학살이 자행됐다. 이후 후세인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을 주둔시키게 됐는데 이로 인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외세 배격이라는 명분으로 젊은이들을 테러전선으로 내모는 데 유용한 명분을 만들어 줬다”고 비난해 왔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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