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아메리칸드림의 명암]<2>닭공장으로 간 한국중산층들

  • 입력 2006년 10월 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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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일했던 조지아 주 클랙스턴의 닭 공장 모습(왼쪽). 닭 공장 일은 미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작업이어서 외국인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다. 오른쪽은 애틀랜타 지역 닭 공장의 내부 모습. 클랙스턴=공종식  특파원·사진 출처=101포울트리매거진
한국인들이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일했던 조지아 주 클랙스턴의 닭 공장 모습(왼쪽). 닭 공장 일은 미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작업이어서 외국인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다. 오른쪽은 애틀랜타 지역 닭 공장의 내부 모습. 클랙스턴=공종식 특파원·사진 출처=101포울트리매거진
《‘그들은 왜 닭 공장에 갔을까?’ 지난해 4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일간 ‘애틀랜타 저널 콘스티튜션’은 한국에서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았던 중산층 출신들이 미국 시골의 닭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도한 일이 있다. 이들은 왜 ‘한국의 중산층’ 대신 ‘미국의 막일꾼’을 택했을까. 이런 의문을 안고 지난주에 이들이 일했다는 조지아 주의 닭 공장을 찾아갔다. 닭 공장이 있는 클랙스턴은 애틀랜타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꼬박 4시간을 달려야 했다.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시골마을이었다. 가는 길에는 면화 밭과 작물을 담는 사일로가 간간이 보일 뿐 드넓은 평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들은 공장에 없었다. 미숙련 이민에 적용되는 ‘의무 복무기간’ 1년을 채운 뒤 새로운 생활을 찾아 미국 전역으로 뿔뿔이 떠난 뒤였다. 공장에는 멕시코인과 흑인 노동자들만 가득했다. 한국인들의 정착촌이었던 스테이츠보로의 아파트에도 이들은 없었다. 수소문 끝에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닭 공장 출신 이민자 5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사진 촬영은 물론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익명 보장을 전제로 만난 이들은 모두 미국 영주권(그린카드)을 땄거나 혹은 영주권 최종 단계에 있었다.》

○ 한국서 가져온 돈으로 생활비 보태

닭 공장 일은 미국에서도 3D 직업으로 분류되는 직종. 따라서 한국에서 육체노동을 해 본 적이 없던 대부분의 이민자들에게는 고되고 험한 일이었다고 한다. 중소기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는 김정식(이하 모두 가명·50) 씨는 “작업 공정이 초 단위로 진행된다”며 “‘인간 기계’가 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닭 공장 일을 그만둔 지금도 과도한 업무 후유증으로 허리와 관절이 많이 나빠졌다”며 “근무 도중 개인전화도 걸고, 잡담도 할 수 있는 한국 직장 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털어놓았다.

최수근(44) 씨는 “업무 강도보다는 일하는 도중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도 주지 않는 빡빡한 미국의 근무체제가 견디기 힘들었다”며 “휴식시간이 끝나고 단 1초라도 늦게 돌아오면 매니저가 반드시 경고했다”고 말했다.

여자들의 업무는 남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고 한다. 가공된 닭을 용기에 담는 일을 했다는 박정숙(43·여) 씨는 “한국에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견딜 만했다”며 “다만 위생 문제로 공장 안 온도를 항상 낮게 유지해 ‘추위’가 가장 참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간당 6.5∼8.0달러를 받았다. 토, 일요일은 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월평균 소득은 1000달러(약 95만 원) 남짓 수준. 때문에 부부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생활비가 부족해 닭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써야 했다.

○ 유학 보낼 형편 안돼 이민 결심

勞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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