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적을 키우는 부시의 ‘입’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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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가 일어난 지 5년째인 올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예년보다 추모행사에 더 열심히 참가해 이슬람 급진파와의 대결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호소했다.

물론 이는 선거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비판 여론이 많은 이라크전쟁의 부담과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도 열세인 대통령이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테러 카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를 위해 현실을 과장하는 것은 정치가가 늘 하는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한 가지는 신경이 쓰인다. 알 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 급진파가 나치 독일이나 옛 소련과 같은 반열에서 논의되고 있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나치 독일이나 냉전하에서의 옛 소련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는 이슬람 급진파가 미국과 세계에 최대 위협이라는 주장이다. 이슬람 급진파는 정말 전체주의일까.

확실히 닮은 점은 있다. 나치가 세계 각지의 전체주의 정당을 지원했고 옛 소련이 코민테른이나 코민포름을 통해 세계 각지의 공산당에 명령을 내렸던 것처럼 이슬람 급진세력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또한 미국과 영국 안에서 나치 스파이가 암약하고 모스크바의 지시를 받은 공산당이 반정부활동을 했던 것처럼 이슬람 급진파도 선진국 안에 거점을 확보해 반정부활동과 테러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슬람 급진파야말로 현대의 나치이자 공산당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전체주의 정당과는 달리 이슬람 세력은 그 땅의 주민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주의 정당은 선거에 약하다. 나치는 예외적으로 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출했지만 선거에서 이겨 정권을 장악한 전체주의 정당은 극히 드물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공산당이 의회정당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이나 이탈리아에서는 의회에 거점을 마련했지만 이름만 공산당일 뿐 정책은 사실상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었다. 자유로운 선거가 치러진다면 과연 북한 정권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이슬람 급진파는 그렇지 않다. 이집트 터키 이란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조금이라도 민주적이라고 할 만한 선거가 치러진 곳에서는 어김없이 이슬람 정당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 물론 선거에서 선출된 이슬람 세력은 알 카에다 같은 테러조직과는 다르지만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나 레바논의 헤즈볼라처럼 전혀 거리가 멀다고 할 수도 없다.

전체주의는 선거에 약하기 때문에 나치 독일이나 옛 소련을 전제지배라고 쉽게 부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주민의 지지를 얻은 정권을 ‘독재’ 또는 ‘전제지배’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이슬람 급진파와의 투쟁을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것이다.

물론 이슬람 사회의 사람들이 알 카에다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슬람 급진파는 나치나 공산당과 달리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슬람 급진파에 대한 비난과 이슬람 사회 전체에 대한 비난을 구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이슬람 사회에서 급진파가 지지를 받는 원동력은, 급진파뿐만 아니라 이슬람 사회 전체가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피해의식 또는 피해망상에서 나온다.

이슬람 급진파를 전체주의와 똑같이 취급하면 급진파가 저지른 테러에 대한 비난이 이슬람 사회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 이는 다시 이슬람 사회의 피해망상을 확대시켜 급진파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넓히게 될 수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은 적을 비난함으로써 적을 키우고 있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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