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안되는 영어교육]<1>수그러들지 않는 사교육 狂風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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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연수를 위해 해외로 나간 사람은 5년 사이 1.7배 늘었다. 영어 연수국으로 추정되는 나라들 중 인원수로 국가별 순위를 매기면 미국 호주 캐나다 필리핀 영국 뉴질랜드 순이다.

총수로는 여전히 미국이 1위지만 호주, 필리핀의 연수생 수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5년 동안 필리핀 연수생은 3500여 명에서 1만100여 명으로 약 3배 늘었다.

마닐라에서 어학원을 운영하는 김범용 원장은 “학생특별허가증(SSP) 발급비(100달러)를 줄이기 위해 방문 목적을 ‘관광’으로 적는 연수생을 합치면 총연수생은 2만∼3만 명일 것”이라며 “부유층에서 중산층으로 어학연수가 확산되면서 필리핀이 인기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신혼여행지가 어학연수지로=여름방학 중인 8월 21일. 한 어학원의 영어캠프가 열리는 필리핀 세부의 스타킬리 리조트.

20여 평의 방갈로 안에 모인 한국 학생 40여 명 중 한 그룹 5명의 학생이 필리핀인 교사와 함께 그룹 웨스트라이프의 노래 ‘My love’를 열심히 따라 부르고 있었다.

2003년 시작해 7회를 맞는 이 캠프의 올해 참가 학생은 모두 150여 명.

이 어학원의 임주돈 원장은 “2003년 세부에 어학원을 세울 당시 5개이던 한국인 대상 어학원이 3년 사이에 80개로 늘었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일간지 데일리 인콰이어러는 8월 3일자에서 ‘한국인들은 관광도 하고 영어도 하러 필리핀에 온다(Koreans are coming to RP see the sights, learn English)’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예전에는 한국인들이 관광을 하러 세부에 왔지만 지금은 20대 청년들이 영어를 배우러 온다”며 달라진 풍속도를 화제로 다뤘다.

어학연수지로 필리핀이 선택되는 이유는 주로 ‘저렴한 연수비’ 때문이지만 생각만큼 싸지는 않다는 것이 직접 필리핀을 찾은 이들의 지적이다.

초등학교 3학년, 유치원생인 두 아들과 마닐라에 온 양은심(41·여) 씨는 “미국 연수보다는 저렴하지만 한 달에 500만∼600만 원은 든다”며 “그래도 효과가 있다면 영어 교육을 위해 앞으로 매년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1인당 사교육비 2억 원 육박=최근 고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한 영어교육원의 8주 과정 여름 캠프는 국내에서 진행되는 데도 불구하고 999만 원이었다. 현재 접수 중인 12주 과정은 1299만 원.

항공료를 포함해 성인이나 대학생이 2개월 동안 미국이나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올 때 드는 비용보다 오히려 더 많다.

이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국제영어마을사업단 측은 “한 반 정원이 3명이며 강사 12명 모두 아이비리그나 미국 명문 주립대 출신의 교육 유경험자”라며 “비싸기는 하지만 시설, 강사진, 교육프로그램은 최고”라고 고가인 이유를 설명했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의 저자 김은실 씨는 “강남 지역에서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영어 사교육에만 1인당 1억 원 이상을 들인다”며 “초등학교 때 유행하는 1, 2년 동안의 단기유학 비용을 합치면 총액은 1인당 2억 원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영어교육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한국 영어학습 시스템의 문제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는 데 비해 성적은 바닥 수준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싼 게 좋겠지’라는 생각으로 연간 가구 별로 수백만∼수천만 원을 쏟아 붓지만 결과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이병민 교수는 “영어를 생활 속에서 익힐 수 없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사교육비를 들여야 하는 현실이 문제”라며 “몇 년 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그렇게 돈을 들이고도 대학 입학 전 회화 수업을 하는 시간은 평균 250시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초보적인 영어 회화를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700∼800시간 정도다.

▽‘현지영어’를 잊게 하는 공교육=문제는 공교육이 ‘살아있는 영어’ 교육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대학생 하모(25)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를 따라 호주에서 1년 동안 생활했다. 하 씨는 “현지인 학교에 다닌 덕분에 귀국 3개월 전 영어로 말문이 트였다”고 말했다.

하 씨는 귀국 직전에는 부모의 통역을 대신해 줄 정도로 영어에 능통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 중고교 영어 수업을 들으며 오히려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

“회화가 아니라 읽기 위주의 교육 때문에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영어 실력이 다른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생각하는 대로 말할 수 있었던 귀국 직후와 달리 이제는 한참 생각해서 머릿속에 문장을 만든 후에야 말을 할 수 있죠.”

중앙대 영어학과 민병철 교수는 “영어선생님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얻을 수 있도록 영어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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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스웨덴의 ‘유창한 영어’ 비결

스웨덴 스톡홀름 엔겔브렉트스콜란학교 7학년생인 엘린(13·여) 양. 한국의 중1학년인 엘린 양이 가장 좋아하는 TV 드라마는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 ‘위기의 주부들’이다. 너무 조숙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이 드라마를 더빙 없이 그냥 영어로 본다는 점이다.

“저뿐만이 아니라 제 친구들도 다 저녁마다 영어 드라마나 영어 시트콤 시청하는 게 주요 일과예요. 매일 1시간씩 꼭 시청하는 영어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알게 돼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엘린 양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데 막힘이 없었다. 기자가 “영어공부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학교에서 한다”고 말했다. ‘영어학원’이나 ‘영어 튜터’ 개념은 없느냐고 묻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매일 TV 영어 프로그램을 보고 영어 소설은 읽지만 이는 엘린 양에게 ‘공부’가 아니다. “그냥 재미가 있어서 볼 뿐”이다.

스웨덴을 비롯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은 지상파의 영어 프로그램을 더빙하지 않고 스웨덴어 자막으로 처리하고 있다. 스웨덴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권 만화를 자주 접하며 정확한 발음과 다양한 어휘를 익힌다. 부모 세대가 펜팔을 했던 것처럼 영어권 친구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유행이다.

스톡홀름=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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