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지붕밑]정치인이야? 연예인이야?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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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집한 군중이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입장하던 주인공은 감격한 듯 슬쩍 눈가를 훔친다. 기다리고 있던 인기 가수와 포옹을 하고, 보도진의 카메라를 향해 손바닥을 활짝 펼쳐 보인다.

미국의 대통령선거 캠페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연출된 것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주인공 역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아니라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 지난주에 열린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여름 강연회 때 벌어진 장면이다.

로이터, AP 통신 등은 최근 프랑스의 대선전이 미디어와 유명인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국식 선거전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사르코지 장관의 강연장 모습은 다분히 미국식이었다. 젊은이들은 UMP의 티셔츠를 입고 삼색기를 흔들면서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사르코지 장관 곁에는 인기 록 가수 조니 할리데이와 흑인 래퍼 도크 지네코가 자리했다.

이런 모습에 대해 정치 평론가들은 “프랑스의 전통은 사라지고 선거 운동이 미국식 선거 쇼로 변질되고 있다”고 쓴 소리를 뱉었다. 정치 분야에서 프랑스의 전통이란 토론과 정책 대결을 의미해 왔다.

사르코지 장관만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사회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세골렌 루아얄 의원도 미디어에 지나치게 노출된다는 이유로 늘 도마에 오른다. 미모의 루아얄 의원은 세련된 옷차림과 상냥한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다. 카메라가 다가오면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적극적인 포즈를 취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인기 영화배우와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시사, 연예, 패션 등 온갖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이런 루아얄 의원의 행보를 놓고 사회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급기야 지난달 비키니 차림의 사진이 잡지에 게재되자 사회당 원로들은 “연예인과 친해지려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연예인이 되려고 하는가”라며 혀를 찼다.

공공토론 감시단체의 드니 뮈제 씨는 “토론과 정책 대결이 특징인 프랑스의 정치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상징과 제스처, 인기인과의 친밀도만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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