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야마시타 유키]군대문화는 힘이 세다

  • 입력 2006년 9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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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이웃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인하대에 왔다. 친구를 사귀고 선후배의 끈끈한 정을 느끼기 위해 동아리활동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물없는 이야기가 오갔고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군대였다. 남자 선배들은 즐거운 듯 이야기하고 신입생은 진지하게 들었다. 한국어가 서툴러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선배의 진지한 군대이야기에 공감하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일본의 자위대는 100% 지원제이며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있어 일반 사람이 군대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의 볼 수 없다. 내 주변엔 자위대를 간 친구나 선배가 한 명도 없어 군대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졌다. 일본에서 TV로 한국 연예인의 입영 모습을 봤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남자는 모두 군대에 가는구나’라고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친하게 지낸 동아리 친구 한 명이 군대에 가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의 성인 남자가 가장 말하기 좋아하는 것이 군대이야기이고 직장인 또한 술자리에서 밤새는 줄 모른다. 때로는 술판을 뒤엎고 다투면서도 틈만 나면 군대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종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기 때문인 것 같다. 직장에서 임무를 책임 있게 처리하지 못했거나, 선배나 연장자를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면, “너 군대 갔다 왔느냐?” “군대도 다녀온 사람이 왜 그래?” 하며 핀잔을 준다.

한국사회에서의 군대는 성인 남성의 의무이지만 제대와 함께 끝나지 않고 사회생활로 이어진다. 규율과 계급에 의해 조직화된 군대문화가 직장에서도 살아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한국의 직장생활을 전근대적인 군사문화의 잔재가 살아있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한국을 최단기간에 선진국으로 이끈 힘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한 행동과 불가능이란 없다는 사고력이야말로 일본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성인 남녀 누구나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든다’라는 말을 하는데 처음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단체생활과 협동정신, 책임 완수와 건강한 신체가 우선인 군대 사회를 거친 남성은 의젓하고 생각이 깊으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넓다.

한국의 여성이 군대를 다녀온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노라면 힘든 일이 많을 텐데, 가장은 이런 능력을 소유한 자여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여성도 한국 남성의 이러한 점을 좋아한다. 일본에서 탤런트 배용준 씨가 ‘용사마’로 존경받는 것도 군대사회를 거친 한국 남성이 갖는 이런 능력이 강하게 어필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이지만 늠름하고 성숙한 사회다. 수십 년간 축적된 군대문화도 월드컵 때 붉은악마처럼 한국사회를 단결시켰다. 여기에서 발산되는 역동적인 힘이 ‘한류’라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고 본다. 한국의 군대문화는 또 하나의 에너지라 하겠다.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더할 수 있다면 세계는 또 한번 한국의 발전에 깜짝 놀랄 것이다.

야마시타 유키(山下裕貴) 야마구치(山口)대 경제학부 3년·인하대 교환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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