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선족 농민의 피맺힌 절규와 시위

  • 입력 2006년 8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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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억울한 사연을 적은 종이판을 목에 걸고 1인 시위를 벌이는 조선족 농민 임종길 씨. 임 씨의 오른손에는 모범노동자 트로피가 들려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2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억울한 사연을 적은 종이판을 목에 걸고 1인 시위를 벌이는 조선족 농민 임종길 씨. 임 씨의 오른손에는 모범노동자 트로피가 들려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강탈한 내 땅 20만 평을 돌려 달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우창(五常) 시 잉청쯔(營城子) 향 신광(新光) 촌에 사는 조선족 농민 임종길(任鍾吉·55) 씨의 피맺힌 절규다.

임 씨는 25일 오전 11시 “지방 간부에게 빼앗긴 토지를 돌려 달라”며 한국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다 곧바로 공안에 연행됐다. 중국에서 인민대회당 앞까지 와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시위를 벌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임 씨가 1000km나 떨어진 베이징까지 와서 호소하게 된 것은 10여 년간 피땀 흘려 개간한 황무지 20만1666평을 아무런 까닭 없이 지방 간부에게 고스란히 뺏겼기 때문이다.

23년 전인 1983년 그는 마을 인근을 지나는 강가의 황무지 300무(畝·1무는 약 201.67평)를 향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개간에 나섰다. 6년 뒤엔 1000무(약 20만1666평)를 추가로 임대차계약을 맺고 개간했다.

6년여의 노력 끝에 그는 26만여 평에 이르는 광대한 황무지를 모두 논으로 일궜고, 매년 국가에 800t의 쌀을 세금으로 바치는 모범일꾼이 됐다. 고향의 향과 헤이룽장 성은 그에게 모범노동자라는 칭호를 수여했고, 1989년엔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등 중앙의 최고지도부까지 그를 직접 만나 노고를 치하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10년이 흐른 1999년 초 갑자기 우창 시의 당 서기와 부서기가 개간한 땅 가운데 1000무를 강탈해 자신들의 친척에게 나눠줬다.

그는 곧바로 우창 시 법원에 토지반환 소송을 냈지만 시의 최고 권력자인 당서기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하얼빈(哈爾濱) 시의 2심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2심에서는 1심 판결이 잘못 됐으니 재심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우창 시 법원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심에 착수하지 않고 있다.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인민의 최고 대의기관인 인민대회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마침 이날 인민대회당엔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사유재산과 국·공유재산을 동등하게 보호하는 것을 골자로 한 물권법 심의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적은 종이판을 목에 건 채 모범노동자 트로피를 손에 들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그의 호소는 5분도 채 안 돼 공안이 그를 연행하면서 종료됐다.

그는 공안에 끌려가면서 인민대회당을 향해 “인민의 재산을 누가 지켜 줄 것이냐”고 애타게 절규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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