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천광암]日시모조 촌의 아기울음

  • 입력 2006년 8월 1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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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6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말띠 해인 병오(丙午)년에 태어난 여자는 ‘남편을 제명에 못 죽게 한다’는 미신이 있다. 이 미신의 영향으로 일본인들은 병오년 출산을 큰 금기로 여긴다. 1966년 병오년을 보자. 그해 일본의 출산율은 1.58로 1965년(2.14)보다 26%나 곤두박질쳤다.

23년 뒤인 1989년 출산율이 1.57로 떨어지자 일본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설마 병오년보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날이 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1.57 쇼크’로 소자화(少子化·아이를 적게 낳는 현상)의 심각성에 눈을 뜬 일본 정부는 1994년부터 대책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에인절계획, 신(新)에인절계획, 신신에인절계획, 보육소 대기아동 제로작전, 소자화대책+1까지….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출산율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사정은 지방자치단체들도 마찬가지. 대다수 지자체가 소자화 해소에 사활을 걸다시피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인 실정이다.

그러나 일본 나가노(長野) 현의 오지인 시모조(下條) 촌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모조 촌은 행정관청인 촌사무소에서 10분 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1262가구가 오밀조밀 모여 살고 있는 아담한 동네다. 번듯한 문화재나 관광자원, 산업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입지 조건만 보면 젊은 세대를 끌어들일 매력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런데도 이곳의 출산율은 1993∼97년 1.80에서 1998∼2002년 1.97로 높아졌다. 1998∼2002년 전국 평균 1.29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촌사무소가 자체 추계한 2004년 출산율은 2.5까지 치솟았다.

시모조 촌의 성공 비결은 과감한 복지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부부를 유치한 데 있다. 시모조 촌은 1990년대 초반부터 임대주택을 지어 주변 지역의 절반 가격으로 젊은 부부들에게 빌려줬다. 젊은 층의 취향에 맞춰 임대주택단지 안에는 실내수영장도 만들었다. 또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찌감치 초등학생까지 의료비를 무상으로 하고 2004년에는 중학생까지 확대 적용했다.

작은 산골 마을이 무슨 ‘주머니’를 차고 있었기에 소자화대책에 이처럼 돈을 펑펑 쓸 수 있었을까. 시모조 촌은 우선 도로와 수로건설 등 공공사업비를 20%로 줄였다. 필요한 자재는 촌사무소가 공급하되 공사는 건설현장 경험이 있는 주민들이 직접 맡도록 했다. 물론 주민들이 처음부터 무료 노력봉사에 찬성했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마음을 돌린 것은 촌사무소의 설득과 솔선수범이었다. 사무소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10년 전 60명이던 직원을 35명까지 줄였다. 인구 1000명당 직원은 8.91명으로 비슷한 지자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전기료를 줄이려고 점심시간에는 촌사무소의 전등을 모두 끄는 등 곳곳에서 절약을 생활화하고 있다. 이 덕분에 시모조 촌은 흑자 살림을 꾸리면서도 출산율 제고에 큰돈을 쓸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일본 정부와 시모조 촌 중 어느 쪽 모델에 가까울까. 우리 정부가 6월 발표한 ‘제1차 저(低)출산 고령화 기본계획’을 보면 일본 정부의 실패 모델을 답습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세금을 더 걷어 보육비와 교육비를 몇 푼 더 쥐여주겠다는 발상인 데다 재원(財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솔선수범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배울 대상은 ‘불임(不姙)성 대책’만 다산(多産)하는 일본 정부가 아니라 시모조 촌의 창의적인 구상과 솔선수범하는 자세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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