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쿠바 엑소더스’ 대비 해안 경계태세

  • 입력 2006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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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에는 현직을 떠날 생각이니 (미국은) 너무 걱정하지 마라.”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쿠바 공산혁명 53주년인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기념식 연설에서 이처럼 익살까지 떨어 가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워싱턴 외교가에선 “카스트로가 심상치 않다. 권력 이양이 예상보다 빨리 닥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곤 했다.

카스트로 의장의 건강 이상 조짐은 2001년부터 관측됐다. 그해 6월 그는 햇빛 아래서 연설하다가 잠시 혼절했다. 2004년 10월엔 연설 끝에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과 팔을 다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지난해 11월엔 “카스트로가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미 중앙정보국(CIA)발(發)’ 미확인 소문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쿠바 당국은 매번 카스트로 의장의 건강 이상설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관측통들은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이번 일시 권력 이양 발표에서도 카스트로 의장은 전혀 TV 화면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긴급 발표 전 쿠바 국영 텔레비전 뉴스 진행자들은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평소와 달리 이례적으로 침울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는 검은색 옷을 입었다고 외신은 전했다.

하지만 카스트로 의장이 지난주까지도 장시간 연설을 하는 등 원기가 여전하다는 관측도 있다. 또 권력 이양이 발표된 이날 밤 아바나 해변 도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젊은이들로 가득 찼으며, 경찰의 치안이 강화되지도 않았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진실은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이번의 와병이 설사 ‘일시적 유고(有故)’에 그친다 하더라도 47년에 걸친 쿠바의 1인 장기집권 체제에 변화가 불어 닥칠 날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카스트로 의장이 2001년 혼절 사건 이후 친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도 ‘그런 날’에 대비한 것이다.

문제는 정작 권력체제 이양이 현실화할 경우 의외의 사태가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카스트로 의장은 국가원수인 국가평의회 의장 겸 행정 수반, 공산당 서기장, 군 최고사령관 등 핵심 요직을 모두 독차지하고 있다. 자리뿐 아니라 실제 국정 운영에서도 허리케인이나 전력난 같은 일상사에서부터 주요 외교업무까지 모든 일을 직접 챙기고 있다. 한마디로 ‘쿠바=카스트로’이기 때문에 ‘카스트로가 없는 쿠바’를 쉽사리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47년은 카스트로가 악인이든 천사든 국민이 완전히 길들여지기에 충분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쿠바 국민도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날 쿠바 깃발을 흔들며 미국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 거리를 질주하던 쿠바 난민 올란도 피노(34) 씨의 말이 오늘의 쿠바를 한마디로 말해 준다.

한편 미 해안경비대는 1980년과 1995년에 있었던 것과 같은 대규모 해상 난민 탈출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보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피터 왓킨스 미국 백악관 부대변인은 “쿠바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혁명동지’ 동생 라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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