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전 美 국무 ‘오 마이 월드컵’

  • 입력 2006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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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작은 도시 휘르트에서 자랐다. 당시 휘르트 클럽은 독일에서 3번 우승을 차지한 최고의 아마 축구클럽이었다. 난 이후 수십 년간 독일을 떠나 있었다. 프로축구가 정착된 지금, 그 팀은 2부 리그로 밀려났지만 난 여전히 그 팀을 응원한다.

그러나 클럽 팀에 대한 애정은 국가대표팀을 향한 열광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클럽 팀은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적어도 매주 한 번 경기를 하지만 국가대표팀은 한 해에 몇 번밖에 경기를 하지 않는다. 그중 가장 큰 경기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다. 월드컵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승리자는 영웅이 되고 패배자는 ‘국민 모독죄’를 범한 죄인처럼 취급받는다. 1994년 월드컵에서 자살골을 넣어 패한 콜롬비아의 한 선수는 귀국한 뒤 살해됐다.

100여 m 길이의 운동장에서 발로 볼을 다뤄 상대편 골문에 집어넣는 것은 발레와 같은 기술을 요한다. 브라질처럼 개인기가 뛰어난 팀은 현란하면서도 천재적인 기술로 관중을 압도한다. 그러나 때로 개인기에 너무 의존하는 팀은 일사불란하게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팀에 당하기도 한다.

1986년 월드컵에서 영국 선수들 4, 5명을 제치고 드리블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같은 극히 소수의 선수들만이 혼자 힘으로 골을 넣을 수 있다. 축구 경기는 원칙적으로 팀워크다. 축구 경기는 공격수가 수비진이 막지 못하고 있는 ‘열린 공간’을 찾아내 슛을 쏜다는 점에서 기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게임이다.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이나 과거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그랬다. 슛을 쏘기 전에는 물론 상상도 할 수 없고 공격이 끝난 다음에야 ‘저런 곳이 비어 있었나’ 싶은 공간으로 볼을 배급하는 놀라운 기술을 갖고 있다.

축구는 수십 년간 점점 더 전략적 게임으로 진화했다. 내가 처음 축구팬이었을 때는 공격수 5명, 미드필더 3명, 수비수 2명을 배치하는 것이 전형적이었다. 공격수가 수비수보다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엔 공격수가 2명을 넘는 일이 거의 없고 나머지 선수는 수비도 해야 한다. 가장 널리 쓰이는 전법은 4-4-2 시스템이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스위퍼’의 도입이다. 베켄바우어는 이 포지션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스위퍼’는 필드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는다. ‘스위퍼’처럼 전 선수에게 상황에 따라 공격이나 수비를 강화해야 할 임무가 주어졌고, 그 결과 축구는 ‘토털사커’가 됐다.

골 넣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워졌고 수비가 공격을 압도하게 됐다. 축구팀, 특히 국가대표팀은 무엇보다 실점하지 않는 경기를 한다. 골인의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잘 훈련된 수비진을 갖춘 팀이 개인기가 우월한 팀을 이기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2004년 유럽선수권에서 조직력의 그리스가 개인기의 포르투갈을 이겼다.

나는 7번이나 월드컵 결승전을 봤다. 올해는 준결승전 하나와 결승전을 베를린에서 볼 계획이다. 결승전마다 극적인 드라마였다.

내가 본 7번의 결승전에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는 3번, 네덜란드 아르헨티나는 2번 올라왔다. 프랑스만이 1번 올라왔다. 결승전까지 올라오는 팀은 늘 비슷하다. 올해는 아마 아프리카가 부상하는 해가 될지 모른다. 2002년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약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어느 팀이 새로 엘리트 팀에 낄 것인가? 트리뷴 미디어 서비스(TMS)

정리=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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