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 옛 레닌그라드, 문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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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에서 바라본 성 이삭 성당. 성당의 웅장한 금빛 둥근 지붕은 이 도시의 상징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에서 바라본 성 이삭 성당. 성당의 웅장한 금빛 둥근 지붕은 이 도시의 상징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고향으로 권력의 산실로 떠오른 곳이다. 도시 곳곳의 박물관과 극장 때문에 ‘러시아의 문화 수도’로, 운하와 다리, 작은 섬 등이 많아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린다.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부쩍 한국과 밀접해지고 있다.》

다음 달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한국총영사관이 설치된다. 2004년 9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당시 두 나라 정상의 합의에 따라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어 러시아에 3번째로 설치되는 공관이다.

유학생까지 합쳐도 우리 교민은 아직 700여 명에 지나지 않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과 방문객이 해마다 크게 늘고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외교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총영사관은 3000여 명의 고려인 동포에 대한 지원도 담당한다.

최재근(崔在根) 초대 총영사 내정자는 “외교 절차를 서둘러 하루라도 빨리 현지에 부임하겠다”고 말했다.

총영사관 설치는 역사적인 의미도 크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1900년 대한제국의 상주 공사관이 처음으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범진(李範晋) 공사가 일제의 국권 침탈에 항의해 1911년 이곳에서 자결했다. 이런 역사의 흔적이 아직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모스크바 역 앞의 옥탸브리스카야 호텔은 이 공사의 숙소였다. 외교적 인연이 100여 년 만에 되살아나는 셈이다.

다음 달 25일부터 인천공항과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을 주 2회 잇는 대한항공 직항편도 생긴다. 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기 위해서는 모스크바를 경유해야 했으나 2004년부터 4∼10월에 한시적으로 직항이 운행되고 있다. 이동수(李東洙) 대한항공 모스크바 지점장은 “직항편의 상시 운행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 도시와 한국의 인연은 그 밖에도 많다. 1897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 한국어 강좌가 설치됐고, 고려인 록가수인 빅토르 최도 이곳에서 활동했다. 1990년 8월 15일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28세의 나이에 요절한 그는 시내의 보코슬로스코야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빛내는 코리안들▼

▽“축구선수론 첫 진출… 모험이 좋아요”▽

프로팀 '제니트' 소속
현영민 전 국가대표

“아무도 와 보지 않은 길이라서 더욱더 러시아에서 뛰고 싶었습니다.”

1월 러시아 프로축구리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단한 전 국가대표 현영민(27) 선수는 “축구 인생의 경험을 넓히기 위해 모험을 했는데 잘한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구단은 물론 연고지 팬들의 관심과 환대 속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

지금까지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과 신의손(발레리 사리체프) 선수 등 러시아 지도자와 선수들이 한국에서 활약한 적은 있지만 한국 선수의 러시아 진출은 처음이다. 현 선수의 입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한국을 알리는 데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제니트는 세계 클럽랭킹 50위권의 강팀이다. 현 선수는 유럽축구연맹(UEFA)컵 등에서 다른 유럽 팀들과 경기를 치를 기회도 많이 가지게 된다.

러시아는 눈 덮인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보통. 현 선수는 혹한 속에서 데뷔전을 치른 후 독감을 앓기도 했다. 워낙 큰 나라라 늘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현지 교민과 유학생들의 도움이 힘이 되고 있다. 현 선수는 여유가 생기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문화·예술도 접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 축구계가 한국 선수에게 관심이 많다며 후배 선수들에게 러시아 진출을 권했다.

▽“거리 걸으면 발레팬들이 알아봐요”▽

세계정상 키로프발레단
발레리나 유지연 씨

“키로프 무대에서 쌓은 소중한 경험을 언젠가는 한국의 후배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세계 최정상의 키로프 발레단의 유일한 외국인 단원인 발레리나 유지연(28) 씨. 서울 예원학교에 재학 중이던 13세 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온 후 15년째 살고 있다. 1995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수석졸업하고 1997년 정식단원이 돼 현재는 솔리스트다.

유 씨는 가끔 거리에서 알아보는 팬들이 있을 정도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 씨는 1년의 절반은 해외공연을 다니지만 키로프가 한국 무대에 설 기회가 자주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키로프는 2004년 10월 내한 공연을 했다.

여름에는 백야의 도시로 유명한 상트페테르부르크지만 겨울은 춥고 길다. 겨울에는 종일 해를 보기 어려워 마음까지 어두워진다. 하지만 눈길을 헤치고 극장을 찾는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감동적이라는 것. 유 씨는 “1년의 절반이 겨울일 정도로 나쁜 자연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러시아인들의 정 깊은 심성은 꼭 한국 사람을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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