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副장관 잘안다” 수시로 친분과시

  • 입력 2006년 1월 7일 03시 02분


코멘트
로비스트는 고객에게 ‘누구누구를 안다. 이러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며 일감을 따낸다. 하지만 정보공개 의무조항이 지켜지더라도 로비의 은밀한 현장까지 공개되는 경우는 없다.

지난해 11월 열린 미국 상원의 불법로비 청문회는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 씨가 현직 내무부 부장관이라는 고위 인사에게 어떻게 다가갔고, 무엇을 요구했고, 고객에게 어떻게 생색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줬다. 의회전문 채널 C-SPAN은 아브라모프 씨의 ‘유죄 시인’ 직후인 5일 2차례 열린 청문회를 재방송했다.

▽사건 개요=루이지애나 주의 인디언 부족 ‘쿠샤타’의 실력자는 2002년 아브라모프 씨를 찾아갔다. 인디언 주무부서인 내무부가 경쟁자인 ‘척토’ 부족에게도 카지노 허가를 내주는 것을 막아 달라고 주문했다. 대가는 3년간 8200만 달러.

아브라모프 씨는 공략 대상으로 당시 현직에 있었던 스티브 그라일스 내무부 부장관을 점찍었다. 알고 지내던 환경단체의 여성 대표인 이탈리아 페더리치 씨를 활용할 셈이었다. 그녀는 내무부 장관과는 단체의 공동 설립자였고, 그라일스 부장관과도 10년 지기(知己)였다. 이런 내용은 수사당국이 아브라모프 씨에게서 압수한 수백 개의 e메일 파일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로비의 4단계=1단계. 2002년 부족장을 그라일스 부장관 집무실로 데려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부족장은 로비스트의 역량에 감동했다.

2단계. 아브라모프 씨는 페더리치 대표에게 e메일로 “척토 부족의 일이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 부장관에게 이번에도 개입해서 중단시켜 달라고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3단계. 페더리치 대표는 번번이 “즉시 움직이겠다”라거나 “오늘 오후 4시에 부장관을 만난다. 걱정 마라”라고 답장을 썼다. 그라일스 부장관 역시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브라모프 씨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부장관은 내부회의 때 “다른 인디언 부족의 논리를 들어봐야 한다”고 개입했다. 아브라모프 씨가 건넨 반론 자료를 장관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아브라모프 씨는 고객에게 “오늘 밤 그를 만났다. 곧 내무부를 떠나 우리 회사에 들어올 것이다”라며 그라일스 부장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4단계. ‘친구의 부탁’을 잘 따라준 페더리치 대표에게는 인디언 부족의 후원금이 답지했다. 쿠샤타족은 2002년 이후 50만 달러(약 5억 원)를 기부했다. 페더리치 대표는 청문회에서 “후원금은 아브라모프 씨가 알선했다”고 말했다.

▽당사자는 “기억 없다”=그라일스 전 부장관은 청문회 내내 “로비 때문에 움직인 적 없다. 정말 억울하다”고 부인했다. 페더리치 대표 역시 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에도 “친구의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며 지원금은 감사하게 받았을 뿐이다. 대가는 절대 아니다”라고 딱 잡아뗐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