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의 숨겨진 얘기들

  • 입력 2006년 1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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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사진) 영국 총리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지도자 샤를 드골 장군을 혐오한 반면 소련의 스탈린에게는 호감을 가졌다. 이 같은 사실들은 1일 영국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공개된 당시 노먼 브룩 내각 부장관의 메모에서 처음 밝혀졌다.》

□1 드골장군 야심가로 간주

英체류때 포로 만들려 해

드골 장군을 허황된 야심가로 여겼던 처칠 총리는 1943년 드골 장군이 영국을 떠나려 한다면 체포까지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40년 독일 나치의 침공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던 드골 장군은 1943년 3월 처칠에게 자유프랑스군 방문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날 포로로 취급한다”고 불평했다. 이 말을 들은 처칠은 “그 말대로 해 주겠다”며 앙심을 품었다.

처칠은 1945년 4월에도 “드골을 없애기 전까지 영-프 관계의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그해 드골 장군은 파리로 돌아가 임시정부 수반이 됐고 전후 유럽에서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끈질기게 저지했다.

처칠은 스탈린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있었다. 1942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을 만나고 와서 각료들에게 “스탈린은 총명할 뿐 아니라 도량도 넓은 호인(large man)”이라고 말했다.

□2 “히틀러는 악의 화신일뿐

체포하면 재판없이 처형”

처칠은 1942년 한 각료회의에서 “히틀러가 우리 손아귀에 떨어진다면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며 “히틀러는 악의 화신”이라고 말했다. 처칠은 나치 지도자들에 대한 재판은 ‘한편의 소극(笑劇)’이라고 생각했지만 미국과 소련은 수주 간의 협의 끝에 재판 후 처형에 합의했고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전범재판을 열었다.

□3 시민불복종 간디 단식에

“죽고싶다면 죽게 놔둬라”

처칠은 간디가 반전 운동을 벌이다 연금돼 단식투쟁을 벌이자 그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간디는 1942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에 인도가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시민 불복종을 호소하다 연금됐다. 당시 빅터 린리스고 인도 총독은 “간디가 단식에 들어가면 죽음도 불사할 것”이라는 전신을 보냈으나 본토 정부는 당시 인도가 일본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간디를 풀어줄 경우 진행될 사태를 두려워했다.

영국 내각은 1943년 1월 격론 끝에 “단식투쟁에 정부가 굴복할 수는 없지만 간디가 죽음 직전에 이르면 인도적 차원에서 풀어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칠은 내각 결정에 반대하며 “간디가 죽고 싶다면 죽도록 내버려 두겠다”고 말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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