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조헌주]갈등 울분 우정 남긴채…굿바이 도쿄!

  • 입력 2005년 12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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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이 러시아와 분쟁 중인 구나시리(國後) 섬이고, 왼쪽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시레토코(知床) 반도입니다.”

아사히신문사의 소형 취재기에 탑승해 눈이 부실 만큼 하얀 눈밭이 된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를 둘러보았다. 동아일보 제휴사인 아사히신문이 3년 수개월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필자의 취재를 돕고 위로를 하기 위해 마련해 준 비행이었다. 2시간 반가량의 탑승 시간은 일본 근무를 추억하게 해 준 귀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2002년 6월 한일공동개최 월드컵대회 때 도쿄(東京) 복판에 울려 퍼진 ‘대한민국’ 구호,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 무대인 유자와(湯澤)와 고급 별장지로 유명한 나스(那須) 고원 여행, 조선통신사와 인연 깊은 고찰에서의 한일 아마 바둑 대회, 일본 최고봉 후지(富士) 산 등정의 감회, 북관대첩비의 반환, 역사 바로잡기에 애쓰는 각계 인사들의 얼굴은 영 잊지 못할 것 같다.

만남과 교류의 기쁨 못지않게 울분과 갈등의 순간도 많았다.

독도 문제로 시마네(島根) 현을 찾았을 때의 분노, 징용희생자의 유골이 산재한 후쿠오카(福岡) 현을 취재할 때의 참담함, 2만여 명의 한국인이 제멋대로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서의 울분, 냉전의 찌꺼기 같은 교포 조직의 대립 속에 고뇌하는 재일교포들의 모습을 보며 느낀 안타까움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느닷없이 닥치는 지진, 한류의 저편에 꿈틀거리는 혐한류 현상도 소름끼치게 했다. 해외 근무로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두 번의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 불효의 자괴감,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의 미숙함으로 주위에 상처를 준 미안함도 크다.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찾아온 노안을 접하는 착잡함도 있다.

감상(感傷)에서 벗어나 일본 생활을 되새겨본다.

일본의 한 언론은 올해 ‘한일 우정의 해’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으로 ‘한중 연대의 해’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려는 역사의 역류는 분명 일본 사회에 있다.

하지만 지난 3년여는 양국민 간 우정의 가능성을 목격한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양국 갈등이 높아진 때에 민간단체 주도로 치러진 ‘한일 우정의 잔치’를 보면 그랬다.

국적과 인종, 나이와 남녀 차이를 떠나 우정이란 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뢰와 사랑이 깃든 우정은 호의와 관심에서 시작하되 갈등과 의심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야만 가능하다. 우정의 새 역사를 내다보며 행사준비를 한 양국의 많은 민간단체와 시민들, 비난을 감수하고 참가한 한국의 여야 정치인 등과 주고받았던 양국 화해의 해법은 앞으로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일본에서 오랜 기간 살아본 한국인들은 송별회 자리에서 “한국 가면 ‘친일파’ 소리 듣기 십상이니 각별히 말조심하게”라고 당부한다. 일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앞에서 일본의 좋은 점을 말하면 즉각 그런 야유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감정에 넘친 발언이 논리를 이기는 형국에선 딱 맞는 말이다. 하지만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도 썩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한국 체재 경험도 있고 해서 한국민의 정서를 잘 아는 일본의 지인들은 “일본 근무 중 누구보다 심하게 일본을 비판했으나 귀국해서는 친선의 다리가 되어 달라”고 주문한다. 수많은 논쟁을 거듭하며 정을 키워 온 이들의 당부가 없더라도 응당 그런 노력을 할 것이다.

귀국 후 만날 지인들에게 미리 말해 두련다. 역사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오늘을 묻기 전에 일본의 어제를 알려는 노력을 해 달라, 그리고 한국의 어제를 이야기할 때 한국의 오늘에 대해 뼈아픈 자성을 해 달라고.

조헌주 도쿄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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