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大義와 倭義

  • 입력 2005년 10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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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내는 왜 이렇게 무덤가를 배회하는 것일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를 생각할 때마다 필자는 이런 의문에 사로잡힌다. 꼭 전쟁 범죄자들의 위패를 모아 놓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고집해서만은 아니다.

내가 놀란 것은 그가 도쿄의 센가쿠지(泉岳寺)를 찾아 거기 묻혀 있는 도쿠가와 막부 시절 사무라이 47인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분향했다는 일화다. ‘오이시 구라노스케, 가야노 산페이, 하자마 주지로….’

한국의 춘향전에 비견된다는 일본 최고의 국민문학 ‘주신구라(忠臣藏)’에 등장하는 ‘아카호 낭사(浪士)’ 47인의 실제 주인공들이다. 1701년 지금은 효고(兵庫) 현인 옛 아카호의 번주(藩主)가 억울하게 죽자 그의 가신 47인이 와신상담 끝에 주인의 복수를 하고 전원 할복한다는 스토리다. 고이즈미 총리는 평소에도 아카호 낭사들을 얘기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카호 낭사들은 마지막에 죽었다. 그래서 일본인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옛날에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

민음사에서 번역해 내놓은 주신구라를 찾아 읽었다. 어쩌면 그 속에 ‘사자의 심장(Lionheart)’이라고 불리는 사내, 고이즈미라는 사내의 내면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덤 앞에 꿇어앉아 망자(亡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주검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내의 모습만큼 진실한 것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실망했다. 칼을 뽑는 행동이 금지돼 있는 쇼군의 에도 성. 아카호 번주의 아내를 호시탐탐 노리고, 와이로(賄賂·뇌물)를 밝히는 막부의 실세가 등장한다. 실세가 괜한 트집을 잡아 번주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자 번주는 칼을 휘두르고, 결국 할복과 폐문(閉門)을 명령받는다. 치정(癡情)과 부패로 얼룩진 백주 칼부림에 불과한 사건이었고, 쇼군은 법을 엄히 집행했을 뿐이다. 그러나 ‘꽃은 벚꽃, 사람은 사무라이’라는 의식으로 뭉친 가신들은 갖은 인생유전을 감수하며 복수전에 나서 실세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뿐이면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복수전이 의(義)의 백미(白眉)인 것처럼 ‘둔갑’하는 대목에서는 좀 황당했다.

주신구라는 다음과 같은 에필로그로 맺는다. ‘후세 후대까지 전해지는 이 의사(義士)들의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실로 천황의 치세가 계속되는 것처럼 길이 남을 것이다.’

문외한이, 다른 것도 아닌 남의 나라 문화와 전통 정서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이즈미라는 사내가 품고 있는 의(義)가 그런 ‘주신구라류(類)’ 수준인가 하는 생각에 입맛이 썼다. 오직 보스의 복수에 목숨을 던진 행동을 의(義)라고 흠모한단 말인가. 의(義)라는 것은 천하를 위하는 마음이요, 요새 말로 하면 리더십이다. ‘전원 할복’이라는 죽음의 형식에 의(義)가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죽었느냐에 참된 의(義)가 있는 것이다. 주신구라엔 그런 게 없었다.

야스쿠니신사와 센가쿠지를 찾는 고이즈미 총리의 리더십도 혹시 이런 식이 아닐까. 선린천하(善隣天下)의 대의보다는 주신구라류의 왜의(倭義)에 사로잡혀 있는….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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