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동시에 여행하고 온 러시아 월인코

  • 입력 2005년 9월 1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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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하면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한국"이라고 답하면 아시아 정치에 밝은 외국인은 당장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남한"이라고 해야 인상이 펴진다.

그만큼 외국인은 북한을 '음흉하다, 무섭다, 폭력적이다'고 여긴다.

하지만 세계식량계획(WFP) 직원으로 북한 근무를 자원한 캐롤라인 리그로스 씨(캐나다인), 젠 후앙 씨(중국인), 마르셀로 스피나 헤링 씨(브라질인)는 다르다.

e메일과 위성전화로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사전에 e메일로 시간 약속을 하고 이들이 본보에 위성전화를 하는 방법을 썼다.

첫 질문은 북한에 대한 느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8년을 북한에서 지낸 세 사람은 신기하게도 대답이 같았다.

"처음엔 무서웠죠. 북한은 '악의 축'으로 지목된 국가 아닙니까. 그런데 실제 살아보니 주민들이 그렇게 친절할 수 없어요. 아이들 미소도 해맑고…."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학교와 병원을 방문한다. 식량이 제대로 배급됐는지 꼼꼼히 리스트와 대조한다.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영양상태도 살핀다. 세 사람은 WFP의 구호 식량이 제대로 배급됐는지 살피는 모니터링 요원이다.

북한 내 WFP 직원은 평양, 신의주, 혜산 등 6개 사무소에 120여명이 있다. 그 중 외국 직원은 45명, 나머지는 북한 직원들이다. WFP는 1995년 이후 지금까지 1조3000억 원어치 식량을 북한에 지원했다. 19개의 비스킷 공장도 운영하고 있다.

8년을 북한에서 근무한 후앙 씨는 "양강도 혜산 사무소에서 인근 함경북도 도시로 넘어가는데 승용차로 꼬박 나흘이 걸린다"며 "산이 꼬불꼬불한데다 도로 사정이 워낙 안 좋아 속도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도시에 속하는 혜산 생활도 불편하다. 호텔에 묵을 때면 물이 안 나오거나 전기가 꺼지기 일쑤다.

후앙 씨가 북한 주민들로부터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중국의 2008년 올림픽 준비는 어떻게 돼 가느냐"와 "한국에는 가 본 적이 있느냐"는 두 가지.

헤링 씨는 서구적 외모와 브라질 출신 덕을 톡톡히 본다. 모니터링에 나서면 신기해하는 아이들이 조르륵 모여든다. 서먹서먹하다가도 "축구 황제 펠레의 국가에서 왔다"고 하면 금세 분위기가 좋아진단다.

하지만 아이들이 "마라도나 선수도 정말 멋져요"라고 할 때는 가슴이 찢어진다. 마라도나는 브라질의 숙적 아르헨티나의 대표 선수다.

리그로스 씨는 "미국과 일본이 식량 지원 1, 2위 국가였지만 2002년 10월 북한의 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이 문제가 된 이후 양국이 지원을 뚝 끊었다"고 걱정했다.

이들은 어떨 때 보람을 느낄까. 또 대답이 비슷했다.

"학교를 방문하면 아이들 노래 소리가 들려요. 만약 원조가 없었다면 노래 부를 기운조차 없었을 겁니다. 처음 봤을 때 앙상하게 뼈만 남았던 아이가 두세 달 후에 볼 살이 차오른 것을 보면 너무나 기뻐요."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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