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 투표율 저조…神政국가 한계 못 벗은 반쪽선거

  • 입력 2005년 6월 1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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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이란의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전국 4만1000개 투표소에서 실시됐다. 그러나 이번 대선 역시 신정(神政)국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반쪽 선거’였다.

AFP통신은 “50%가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투표 참여율이 새 정권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고 종교지도자이자 사실상의 최고 권력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씨는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여성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 씨를 비롯한 개혁진영이 선거 보이콧 바람을 확산시켜 나가자 직접 투표 참가를 호소했다.

하메네이 씨는 이날 “투표는 신성한 행동”이라며 “누구에게 투표하든 그것은 우리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혁명수호위원회를 정점으로 한 ‘이슬람 신정 체제’는 변함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USA투데이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최고 종교지도자인 하메네이 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선거 자체를 보이콧하자는 목소리도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유세 현장을 보면 이란에서도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거역할 수 없는 대세임을 알 수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5일까지 대선 후보들의 유세장은 선거운동원과 유권자들이 미국의 록과 랩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등 파티를 방불케 했다.

유세 장소도 대부분 과거 이슬람사원이나 거리에서 대학 캠퍼스와 쇼핑몰로 옮겨졌고, 2001년 대선까지 등장했던 ‘미국에 죽음을’ ‘위대한 이슬람을 위해’ 등의 강렬한 구호도 사라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첫 여성 시위가 벌어지는 등 ‘정치적 해방공간’이 만들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는 4700만 명의 유권자 가운데 70%에 달하는 20, 30대 젊은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20대 기술자인 파리드 메라비안 씨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이란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또 아랍 국가 중 가장 선진적인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에 기여했다. 인구 6900만 명 가운데 인터넷 사용자가 1500만 명에 이르고 10만 개의 블로그가 활동 중이다.

유일한 개혁파 후보로 2위를 달리고 있는 무스타파 모인(54) 후보는 물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70대의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후보도 이런 변화의 흐름을 외면하지 못했다.

외신들은 라프산자니, 모인, 그리고 바크르 칼리바프(전 경찰총수)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져 24일이나 7월 1일 결선투표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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