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총선]제2건국이냐 민족분열이냐 갈림길

  • 입력 2005년 1월 28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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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 민주주의 실험 성공여부 가늠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선언한 ‘자유 확산’의 첫 번째 실험장이 될 이라크 총선이 30일 실시된다.

이라크로선 195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계속된 독재정권에서 벗어나 처음 치르는 민주선거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은 제2의 건국을 향한 첫걸음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반면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이 정치적 주도권 싸움에 돌입함으로써 민족분열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상반된 분석도 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중동의 정치지도에 새로운 색깔을 칠할 수도 있다. 미국이 또 다른 자유 확산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이란의 주도세력(시아파)은 총선결과에 따라 고무될 수도, 위축될 수도 있다. 미국 중동 전략의 대표적 파트너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정을 계속 유지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총선의 의미와 과제=이번 총선은 영구헌법을 만들 제헌의원 275명을 뽑는다. 제헌의회 의원들은 대통령과 부통령 2명,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총리를 선출한다.

이라크 국민이 국민투표로 영구헌법에 동의하면 12월 15일 이전에 다시 총선을 치러 새 의회를 구성한다.

따라서 이번 총선을 통해 이라크에는 미 군정 및 과도정부 체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새 정치체제가 출범한다. 이라크 국민 스스로 장래를 결정하는 구도가 제도화 되는 것이다.

미 행정부는 이번 총선이 주권이양의 실질적인 첫걸음이며 미군 철수의 길을 닦을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7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라크 지도자들은 당분간 미군이 점령자가 아닌 후원자로서 주둔해 달라고 희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수 시기는 늦어질 수 있지만 주둔군의 위상이 바뀐다는 의미다.

문제는 총선의 결과. 투표율이 저조하거나, 일부 지역에서 총선 자체가 무산된다면 ‘자유주의 확산을 통해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부시 미 대통령의 구상은 타격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폭정의 거점(Outposts of Tyranny)’ 국가들에 대한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분리주의 논란=총선 후 분열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시아파 지도자인 아마드 찰라비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은 27일 남부 바스라, 아마라, 나시리야 등 시아파 지역을 중앙정부에서 분리해 자치지역으로 선포하자고 주장했다.

이들 지역은 이라크 석유수출의 90%를 차지하면서도 경제사정이 열악해 중앙정부 재정의 20% 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발언은 시아파 대표 정당인 유나이티드이라크연맹(UIA)의 정서를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분쟁 해결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CG)은 27일 북부 유전지역 키르쿠크의 쿠르드족 문제가 이라크 안정을 해칠 뿐 아니라 내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연합(EU)은 종파 간 지역간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이날 총선 직후 2억 유로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지구촌 이목 집중… 취재진 3000명 몰려

27일 현재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회의장에 마련된 프레스카드 발급센터에 몰려든 외신기자는 3000명에 달한다. 목숨을 걸고 이라크 총선 취재에 나선 사람들이다.

납치와 참수가 횡행하는 위험지역에 이만큼 많은 기자들이 몰려든 것은 이라크 총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반영한다.

이라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국제단체 파견자를 포함한 투표 감시단의 수가 1만8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취재기자들은 자국 정부의 이라크 여행 금지와 저항세력의 납치 위협이라는 ‘이중의 벽’을 뚫고 현장에 접근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14개국 언론인 62명이 숨졌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자국 여기자가 이라크에서 실종되자 “기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이라크 현지취재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해당 언론사는 현장 보도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프랑스 국영 TV 기자들도 27일 성명을 내고 “이라크 출장을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제기자연맹은 “이라크 출장 여부는 정부가 충고할 사안이 아니라 언론사가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라크 취재기자들의 운명은 ‘로또처럼 운에 달렸다’고 한 프랑스 라디오 간부가 표현했다. 언제 어디서 납치되거나 피살될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8일 ‘PRESS(보도)’ 문구가 새겨진 방탄조끼를 찾는 취재기자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PRESS’ 표시가 오히려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조직은 기자들도 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기자를 납치 살해하면 전 세계에 보도되고 파장도 커진다는 이유도 있다.

○…각국 취재기자들은 중앙선관위의 신분증은 물론 이라크 내무부와 다국적군 사령부의 신분증을 따로 발급받아야 한다. 이라크군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고 안전의무를 이행한다는 서약서에도 서명해야 한다.

카메라가 없는 기자들은 투표소를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지만 카메라 기자들은 지정된 투표소에서만 취재가 가능하다. 휴대전화나 무선 송수신기를 휴대할 수도 없고 투표소나 동료 기자들의 위치도 공개할 수 없다.

○…‘국경 없는 기자회’ 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취재기자들의 사망보험료는 매우 높다. 대부분 지역의 보험료는 하루 7∼9유로에 불과하지만 이라크는 한 달에 3000유로(약 400만 원)로 나타났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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