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EU “못살겠다… 弱달러” 美 “경기진작위해 조금 더”

  • 입력 2004년 11월 1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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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 뒤 전 세계적으로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환율전쟁’ 양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유로화는 최고치로 치솟았고, 8월까지 달러당 112엔선을 유지하던 엔화도 105엔대까지 가치가 올랐다.

달러화 약세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경상수지 및 재정 적자)가 불어난 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

그러나 일본과 유럽연합(EU)은 미국 무역적자의 4분의 1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하는 점을 들어 ‘중국의 고정환율제 탓에 우리만 손해보고 있다’며 불만스러워 한다.

일각에서는 환율을 둘러싼 혼란이 더 심해지면 주요국들이 달러화 하락에 합의했던 1985년의 ‘플라자 합의’와 비슷한 대타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한다.

▽‘강한 미국’과 ‘약한 달러’의 아이러니=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세계 곳곳의 외환시장에는 달러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의 집권자가 ‘강한 미국’을 표방할수록 달러화가 힘을 잃은 전례를 감안할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

베트남전쟁의 지출 증가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자 닉슨 행정부는 71년 금 태환을 금지시켰다.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과 군비 경쟁을 벌이다 달러 약세에 시달리다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부시 행정부는 ‘쌍둥이 적자’를 안은 채 이라크전쟁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차이라면 당시는 서방진영이 공산권에 맞서 결속한 반면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균열이 두드러진다는 점. 유로화가 ‘제2의 국제통화’ 위상을 굳힌 것도 달러화의 위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2004 회계연도(2003년 10월∼2004년 9월) 미국의 재정적자는 4125억달러로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갈아 치웠고 경상수지 적자는 5000억달러를 훌쩍 넘었다.

프레드 버그스텐 미 국제경제연구소(IIE) 이사장은 “불균형을 시정하려면 위안화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의 통화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아시아 국가를 포함하는 ‘확대 플라자 합의’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일본과 유럽의 ‘이유 있는 불만’=EU 가맹 12개국 재무장관들은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비공식 모임을 갖고 유로화의 가파른 상승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외신들은 “서방선진7개국(G7) 중 미국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내년 2월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달러 약세와 위안화 문제가 주로 거론될 것”이라고 전했다.

와타나베 히로시(渡邊博史) 일본 재무관은 “최근의 달러 약세는 미국의 경기지표와 괴리돼 있고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다”며 시장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일본이 시장개입을 단행하면 미국 산업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될 뿐 아니라 일본의 경기가 살아나는 상황이어서 명분도 적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U도 회원국간의 이해가 엇갈려 일사불란한 대응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겉으로는 ‘강한 달러’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국내 경기 진작을 위해 ‘약한 달러’를 선호하는 만큼 달러 약세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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