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질병통제센터, 전세계 상대 방역비상

  • 입력 2004년 11월 8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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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9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베트남에서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호흡기 이상증세를 보이는 어린이들의 병인(病因)을 알고 싶다는 문의였다. 미국 일부 어린이들이 독감으로 사망한 직후여서 CDC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같은 날 심야에 베트남으로부터 또 다른 e메일이 도착했다. “어린이들이 열과 기침, 호흡곤란 증세를 보임. 일부는 설사 증세.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어남.” CDC는 독감 감염 여부를 조사하라는 답신을 보내고 관련 장비를 공수했다. 예감은 불길했다.

당시 아시아지역에 조류독감이 퍼졌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한국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조류독감 발생을 보고하지 않았다. 1월 8일 베트남은 비로소 조류독감 발생사실을 공표했다. 이미 어린이 11명이 숨지고 난 뒤였다.

열흘 뒤 CDC의 팀 우에키 박사 등이 베트남으로 달려가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들과 현장조사에 나섰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을 달랜 결과 환자들이 가금류와 접촉한 사실을 밝혀냈다. 베트남은 중국 국경을 폐쇄하고 고강도 방역에 나섰다.

1997년 홍콩에서 3세 어린이가 숨졌을 때도 CDC의 후쿠다 게이지 박사 등이 현장으로 향했다. 환자들이 급증했다. CDC는 상황실을 차려놓고 수의사들과 밤새 작업한 결과 신종 조류독감(H5N1) 발생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홍콩 당국은 즉각 모든 가금류를 도살 처분했다.

뉴욕 타임스는 7일 CDC의 전염병 전문가들을 신종 독감과 맞서 싸우는 ‘사냥꾼(Flu Hunter)’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홍콩 중국 베트남 몽골 등 어디든 달려간다.

이들은 5000만명이 희생된 1918년 스페인 독감과 같은 치명적인 신종 독감이 곧 발생한다는 긴박감 속에서 근무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2년 연속 독감 백신 품귀로 공포감이 확산돼 어려움이 더 커졌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각국 정부의 은폐와 비협조. 최근 중국과 태국 등은 조류독감 발생을 사실대로 공표하지 않았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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