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수훈]선진국의 조건

  • 입력 2004년 11월 7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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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거에 패자란 없습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다음 날 아침 깨어나면 우리는 모두 미국인일 뿐입니다. 이제는 나라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공동의 목적을 찾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후회나 분노 증오를 갖지 말고 공동의 노력에 동참해야 합니다. 나는 당파적인 분열에 다리를 놓기 위해 내 몫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여기에 동참해 주기를 바랍니다.”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대선 결과 승복 연설이다. 필자는 이 연설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거니와 ‘과연 미국은 선진국이구나’ 하는 부러움도 느꼈다.

▷선진국이라고 하면 흔히 부강한 국가를 떠올린다. 그러나 부강한 국가가 반드시 선진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력과 군사력은 선진국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필자는 선진국의 충분조건으로 부강함에다 우리가 보고 배울 점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기준을 꼽는다. 케리 후보가 오하이오주의 개표 절차에 연연하지 않고 신속하게 패배를 인정한 점, 결과에 승복하면서 미국 공동의 목표를 향한 협력의 대열에 동참을 당부한 점 등은 선진 정치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우리가 보고 배울 점이다.

▷미국은 야구 같은 스포츠에도 승복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아무리 격렬한 전투를 벌였더라도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문화가 정치 분야를 비롯해 거의 모든 영역에 정착돼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한 전통을 갖는 사회이면서도 협력에 인색하지 않은 조직문화를 갖고 있기도 하다. 승복과 협력이 맞물려 돌아가니 선진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우리는 경쟁은 잘하는데 협력은 약하며 승복의 문화도 없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선거를 돌아보면 패자의 진정한 승복이 없었다. 그 결과 대선 후유증이 심각했다. 미국에는 한번 대선에 나서고 패배하면 십중팔구 재도전을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패자’와 ‘우아한 은퇴’가 일반화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3수, 4수가 예사고 심지어 선출된 대통령도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이런 상황에서 분열과 갈등이 지속되고, 모두가 바라는 도약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수훈 객원논설위원·경남대 교수·국제정치경제 leesh@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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