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신비 벗긴 생명공학계 ‘대부’ 英크릭박사 타계

  • 입력 2004년 7월 30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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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의 유전정보가 담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세계 처음으로 발견한 영국의 분자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 박사(사진)가 28일 타계했다. 향년 88세.

크릭 박사가 일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솔크생물학연구소의 앤드루 포터필드 대변인은 그가 대장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한 끝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크릭 박사와 공동으로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해 함께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제임스 잡슨 박사는 “나는 그와 함께 연구하고 대화했던 시절을 항상 그리워했다”고 추념했다.

크릭 박사는 1953년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DNA 분자가 ‘꽈배기 사다리’ 모양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또 사다리의 가로대에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등 4가지 염기가 결합해 유전정보를 전달한다는 점도 알아냈다.

1953년 DNA 이중나선구조를 규명한 뒤 DNA 대형 모형을 놓고 DNA구조를 설명하는 프랜시스 크릭 박사. 왼쪽은 공동 발견자인 제임스 잡슨 박사. -동아일보 자료사진

발견 직후 흥분한 그는 케임브리지대 구내식당으로 달려가 “우리는 생명의 신비를 알아냈다”고 외쳤다. 이 발견으로 크릭 박사는 현대 생물학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진화론의 찰스 다윈과 유전법칙의 발견자 그레고어 멘델과 같은 반열에 올라섰다.

그의 발견 이후 생물학은 수박만 한 토마토를 만들어내고 유전자 치료로 질병을 고치며 범인검거에 단서를 제공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이후 생명공학은 연간 300억달러(약 35조원)의 산업으로 성장해 160종의 신종 약품과 백신을 생산하는 시대가 됐다.

크릭 박사는 런던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35세 때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이해하는 문제와 맞붙기로 결심하고 DNA 구조 해독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런던 킹스대의 모리스 윌킨스 박사와 로잘린드 프랭클린 박사의 DNA X선 분석 자료에 크게 의존했다. 크릭 박사와 잡슨 박사, 윌킨스 박사는 1962년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프랭클린은 1958년 사망했다.

이후에도 그는 ‘유전정보는 모든 생명체에 존재한다’ ‘유전정보가 한번 단백질로 바뀌면 다시 빠져나올 수 없다’ 등의 이론을 내놨다. 훗날 이 이론들은 모두 맞는 것으로 판명됐다. 크릭 박사는 61세 때인 77년 솔크생물학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만년을 보냈다. 이 시기에 그는 뇌 또는 의식의 문제를 집중 연구하고 지구 생명체의 외계 도래설 같은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유전자 조작에 따른 윤리 논쟁이 일어나자 그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사람이 오늘날 TV가 전 세계 정치에 미치는 파급력을 생각할 수 있었겠느냐”는 말로 스스로를 변호하기도 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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