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의 일본 제목은 형제애를 뜻하는 ‘브러더후드(Brotherhood)’이다. 관객들이 태극기의 존재에 낯설어할 것을 감안한 선택이다. 상영 내내 일본어 자막을 따라가다 보면 ‘이참에 한국어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할 이도 나올 것이다. 한국어 학습 열기는 이미 달아올랐다. 작년 말 현재 일본에서 한글 강좌를 운영하는 고교는 219개교로 10년 전보다 5배나 늘었다. 제2외국어 중에선 중국어, 프랑스어에 이어 3위다.
▷젊은층의 마음을 흔든 ‘한류 열풍’과는 상관없이 교육현장은 국기(國旗)인 ‘일장기(히노마루)’와 국가(國歌)인 ‘기미가요’를 둘러싼 논란으로 혼란스럽다. 일부 학교의 졸업식과 입학식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 때 일어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육위원회가 징계에 나섰기 때문이다. 도쿄도의 경우 교사 238명이 징계를 당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상당수 ‘보통 일본인’들은 지금도 일장기에서 군국주의의 망령을 떠올린다고 토로한다.
▷원빈의 팬인 고쿠라 레이코(小倉玲子·29·여)는 “이렇게 잘생긴 배우가 (영화에서처럼) 위험한 군대에 가야 한다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태극기…’는 남북분단 상황에 관심이 없는 일본인들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간접 체험하는 계기가 됐다. 패전으로 괴멸 상태에 빠진 일본 경제가 6·25전쟁 특수(特需) 덕에 기사회생한 사실은 도요타자동차의 사사(社史)에도 기록돼 있다. 일본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 6·25전쟁과 일본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라는 건 무리한 주문일까. 하긴 한국에서조차 전쟁의 의미가 바래지고 있으니….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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