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출범한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쟁의 악화로 미국 내에서 아시아지역의 분쟁에 대한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70년 10월 15일 미 제7사단 1만2000명을 1단계로 철수시키고, 71년 3월 27일엔 미 제7사단의 본대 병력 8000명을 추가로 철수시켰다.
두 번째 주한미군 감축은 77년 1월 카터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미 제2사단 철수계획을 수립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하면서 진행됐다. 이에 따라 1단계(77∼79년)로 2사단 1개여단 6000명을, 2단계(79∼81년)로 9000명을 철수시킨다는 계획이 마련됐으나 미 중앙정보국(CIA)이 ‘북한군 전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보고서를 내고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 의회가 철군에 반대하는 바람에 실제 감축병력은 3400명(77년 6월∼78년 12월)으로 수정됐다.
이 과정에서 카터 대통령은 당시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던 존 싱글러브 미 제8군 참모장(소장)을 77년 5월 21일 전격 해임하기도 했다.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 때마다 한국에 군사적 지원을 약속했다. 닉슨 대통령은 71년 한국에 15억달러 규모의 군사원조를 약속했고, 카터 대통령은 77년 주한 미 공군력의 증강과 군사차관(FMS) 제공 등을 제시했다.
이 같은 주한미군 감축은 1·21사태(68년), KAL기 납북(69년), 박정희 대통령 저격미수사건(74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년) 등 한반도 안보상황과는 상관없이 미국의 정치상황과 논리에 따라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역대 주한미군 규모와 철수 관련 주요 상황 | 연도 | 주한미군 규모 | 비고 |
1968 | 6만7000명 | 1·21사태 발생 |
1969 | 6만3000명 | 미 닉슨 정부 출범, 닉슨독트린 발표, KAL기 납북 |
1971 | 4만1000명 | 주한미군 2만명 2단계 철수 완료 |
1974 | 3만8000명 | 박정희 대통령 저격미수사건 |
1975 | 4만2000명 | 베트남 공산화 |
1976 | 3만9000명 |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
1977 | 4만2000명 | 카터 정부 출범, 주한미군 철수안 발표 |
1978 | 3만9000명 | 3400명 철수 후 추가 감축 중단 |
1981 | 3만8000명 | 레이건 정부 출범, 주한미군 철수 백지화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