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 의료시장 넘본다<上>병원-대학설립 개방 압박

  • 입력 2004년 1월 4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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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자국의 의료시장을 개방해 관련 산업을 비약적으로 육성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에 광범위한 의료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또 중국의 일부 보건의료 관련 기업은 한국 진출을 위해 시장조사를 한 것으로 드러나 중국의 공세적 의료시장 개방 요구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관련 부처간에 아직 입장 정리가 제대로 안돼 중국의 이 같은 개방 요구에 전략을 수립하기는커녕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의료시장 개방 요구 실태와 배경을 2회 시리즈로 알아본다.》

중국은 2002년 6월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서비스분야 협상에서 한국에 합자병원 설립, 의료진의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는 양허요청서를 제출했다.

중국은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양국간 협상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중국의 개방 요구=중국에서는 현재 각국의 의료진이 앞다퉈 합자병원을 세우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는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30개 이상의 합자병원이 성업 중이다.

한국에서도 SK㈜와 SK텔레콤이 최근 국내 병의원과 연계해 베이징에 중국 정부와의 합자로 아이캉(愛康)병원을 설립한 것을 비롯해 수십개의 병의원이 진출했다.

현재 중국의 의료 수준은 한국에 5∼10년 뒤떨어져 있지만 이처럼 외국 자본과 기술이 물밀듯이 들어가면서 경쟁력이 급속히 향상되고 있다.

10년 후면 중국이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의 의료 중심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의료시장 개방을 바탕으로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한국에 대해서도 시장 개방을 요청하고 있어 한국으로서도 거부할 명분이 약한 실정이다.

중국의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의료 분야의 대표적 기업인 싼주(三九·999)그룹은 작년 한국에 중의대(中醫大)를 설립할 경우의 수익성을 알아보기 위해 시장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개방 논란=정부는 최근 ‘2004년 경제운용 방향’을 발표하면서 시장 개방과 외자 유치를 통한 서비스업 유치에 의료분야도 예외일 수 없으며 세계 초일류 의료기관과 합자병원 설립을 위한 협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관 부처인 보건복지부 내에서는 의료시장 개방과 관련해 의견이 분분하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의료계의 의견을 수렴해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의료시장을 개방하면 의료의 공공성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며 실익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DDA 협상이 소강 국면에 있는 데다 선진국은 의료시장 개방에 별 관심이 없어 중국이 다자간 DDA 협상을 통해 한국의 개방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작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통상교섭본부 민동석(閔東石) DDA 담당 심의관은 “DDA는 일괄타결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어느 한 분야만을 개방하지 않을 수가 없고 의료서비스 분야는 대다수 국가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결국 개방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다자간 협상틀인 DDA가 아니라 양자협상을 통해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의료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민의 의료선택권을 확대하는 차원에서도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사회벤처협회 박인출(朴仁出) 회장은 “시장을 개방하고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경쟁력 강화책은 없다”고 주장했다.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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