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마저 법정에? …`소송천국` 美의 명암

입력 2003-12-11 18:55수정 2009-09-2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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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을 상대로 소송을 건다.” ‘소송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 사회의 풍조를 빗댄 농담 중 하나다. 미국에 만개한 소송 문화는 대기업이나 정부 등 거대 권력에 맞서 개인이 권리를 찾는 순기능을 해 왔지만 이제 도를 넘은 소송 만능주의로 사회 기능이 마비될 지경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개의 시사주간지 최신호(15일자)가 소송 천국의 실상에 대해 비판(뉴스위크)하거나 옹호(위클리 스탠더드)하는 기사를 동시에 게재해 눈길을 끈다.》

▽암(暗)=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송은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립 골프장에서 번개를 맞았다며 지방자치단체를 고소하고, 자살을 막지 못했다며 장관에게 소송을 제기한다. 도주하던 성폭행 용의자는 눈길에서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절단했다며 “왜 빨리 체포하지 않았느냐”고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을 한다. 자녀가 다쳤다며 소송하는 부모가 수천 명에 이르자 놀이터에서 시소나 정글짐이 사라지고 있다.


무리한 소송은 법정에 가기 전 취하되거나 합의에 이르기도 하지만 이기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심리로 일단 소송을 내고 보는 행태가 적지 않다. 법정으로 가지 않더라도 의사 교사 등은 ‘소송 공포’만으로도 업무에 지장을 받는다. 미국에서 매년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은 2000억달러(약 237조원)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의사들은 소송을 당할 경우에 대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500억∼1000억달러에 해당하는 불필요한 처방과 진료를 한다.

▽명(明)=1980년대 한 고등학생이 미식축구를 하다 머리를 다쳤다. 변호사 마크 보치는 자기 돈 35만달러를 써가며 6년간 이 일에 매달렸다. 학생이 쓰고 있던 헬멧을 조이는 장치 하나가 안전성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헬멧 회사는 문제의 제품을 리콜했다.

정부가 헬멧의 끈을 일일이 감시하고 규제하기는 어렵다. 소송은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효율적으로 문제점을 드러내 주는 시스템이 된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횡포’에 맞설 수 없었던 소비자와 납세자의 권리도 집단소송 등을 통해 개선됐다. 과거 담배 회사가 소송에 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기업은 원고가 소송비용을 감당 못해 포기할 때까지 질질 끌 수 있다. 그러나 소송 변호사들이 집을 저당 잡히면서 버텨내 1998년 담배 회사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을 승리로 이끌었다.

소송 관련 비용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은 아니다. 보상액 중 상당 부분은 안전장비 등 특정한 공익 목적에 쓰이도록 용도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소송제도는 파생되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분쟁 중재자를 둘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 해결의 유력한 수단이 된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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