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죽음의 의사…2000년네덜란드 안락사 인정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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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네덜란드 하원을 통과했다. 안락사를 인간의 권리로 인정하고 법으로 명문화한 것은 인류 최초다.

1994년 미국 오리건주가 ‘품위 있게 죽을 권리에 관한 법’을 제정했으나 이는 소극적 안락사인 ‘존엄사’에 국한됐고 뒤 이어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했던 호주는 6개월 만에 법안을 폐기했다.

법안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로마 교황청은 성명을 내고 “이 법으로 인해 환자 자신이 가족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생명의 외침’이라는 인권단체는 “안락사를 일단 허용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 죽음을 원치 않는 사람들과 장애인들마저 대상에 포함된다”고 경고했다.

물론 살아있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일 때 자살은 생명권의 연장이라는 찬성론도 만만치 않다. 고통 없는 죽음, 편안한 죽음은 축복이며 이를 돕는 것은 자비라는 적극적인 해석도 있다.

10여년 동안 130명을 안락사시켰던 ‘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언은 그 대표적 인물.

그는 1999년 루게릭병 환자를 안락사시킨 혐의로 2급 살인죄를 적용받아 10∼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당시 미 CBS방송은 그가 환자에게 극약을 직접 주사하는 안락사 장면을 방영해 큰 파문을 일으켰었다.

자신을 인권운동가인 킹 목사에 비유했던 케보키언은 “나는 국가를 대신해 사형을 집행할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끊은 환자들 상당수가 더 이상 삶이 고통일 뿐인 말기환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 대학의 연구팀이 그가 안락사시킨 69명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6개월 미만밖에 살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은 17명에 불과했다.

“케보키언은 매명(賣名)에 눈이 어두운 살인마”라는 비난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변호인이 법정에서 토로했듯 “케보키언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고 그런 그에게 ‘타인의 생명’을 맡긴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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