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35년 존 애덤스 美대통령 출생

  • 입력 2003년 10월 29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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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는 2002년 로널드 레이건이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장수였다는 것 외에는 대중의 관심에서 까맣게 잊혀진 지도자였다.

그런 그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뒤 ‘부자(父子) 대통령’의 원조라고 해서 한동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애덤스의 아들인 존 퀸시 애덤스는 6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는 1796년 선거에서 ‘평생의 라이벌’인 토머스 제퍼슨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제퍼슨이 차순위 득표를 하는 바람에 연방파 대통령에 민주공화파 부통령이라는, 미 헌정사상 초유의 ‘동거 정부’가 탄생했다.

‘건국의 아버지’인 두 사람의 관계는 이때부터 꼬여가기 시작했다.

1800년 대선에서는 정-부통령이 맞붙어야 했고 애덤스는 제퍼슨에게 패하자 “그가 나를 쫓아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정권 이양에 매우 비협조적이었다. 제퍼슨의 대통령 취임식장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독립선언 50주년 기념일인 1826년 7월 4일 나란히 눈을 감은 것은 기묘한 우연이다. 이때 애덤스는 이렇게 한탄했다. “내가 제퍼슨보다 먼저 가는구먼….” 그러나 제퍼슨은 그 바로 몇 시간 전에 숨졌다.

‘뉴욕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필라델피아에서 가문 자랑하지 말고, 보스턴에서 학벌 자랑하지 말라’는 그 보스턴에서 태어나고 자란 애덤스. 그는 까다롭고 완고한 정치인으로 종종 묘사되지만 전기작가 데이비드 매컬로에 따르면 애덤스는 청렴하고 도덕적으로 철저한 지도자였다. 그는 평범했지만 신실했다.

그리고 그는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 “이것이 가장 어렵고, 가장 위험하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꿰뚫어볼 만큼 혜안이 있었다. 다만 그는 인기가 없었다.

어쩌면 정치란 애덤스처럼 정직한 사람에겐 견디기 힘든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는 정치를 환멸했다. “그 어떤 정치적 종파나 파당에서 우리가 언제 진실을 찾아볼 수 있었던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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