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 기원지 가다]영국 맨체스터…돌턴 원자설 200돌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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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청에 있는 돌턴의 동상.
맨체스터 시청에 있는 돌턴의 동상.
《영국 맨체스터 하면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얼마 전까지 이 팀에 소속돼 있던 데이비드 베컴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200년 전에는 한 과학자가 맨체스터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혔다. 그의 이름은 존 돌턴. ‘근대화학의 아버지’ ‘화학의 언어를 발명한 인물’로 칭송되고 있다. 돌턴은 1803년 10월 21일 맨체스터대에서 자신을 세계적인 과학자로 만들어준 원자설을 발표했다.》

13일부터 23일까지 맨체스터에는 돌턴 원자설 2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각종 행사가 한창이다. 이 행사에서 돌턴은 화학혁명뿐 아니라 미래과학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나노기술의 아버지로도 칭송됐다.

행사를 주최한 영국왕립화학회 회장인 해럴드 크로토 박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물질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구성요소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며 “현대 나노기술도 원자와 분자의 특성을 밝히고 활용한다는 점에서 돌턴은 나노기술의 최초 연구자”라고 말했다. 크로토 박사는 탄소분자 60개로 구성된 축구공 모양의 분자인 C60(풀러렌)을 발견해 199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14일 돌턴이 1793년 맨체스터에서 직업을 구했던 뉴칼리지 자리에 원자설 200주년 기념비가 세워졌다. 해럴드 크로토 박사(왼쪽)와 카운실러 오드레이 존스 맨체스터 시장이 기념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미용기자

모든 물질이 궁극적으로 매우 작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구성된다는 생각은 기원전 400년 경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가 처음 제안했다. 돌턴은 이 원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혔다. 그는 다양한 원소들은 각자 같은 모양과 무게를 가진 원자이며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는 원자가설을 세웠다. 또한 원자들이 1 대 1, 1 대 2, 1 대 3과 같은 일정한 비례로 결합한다는 배수비례의 법칙도 발견했다. 이는 화학자들이 간단한 수식으로 화학적 반응을 기술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근대화학의 기초가 됐다.

돌턴이 원자설을 떠올린 계기는 의외로 기상학 연구에서 비롯됐다. 그는 사망 전날까지 57년 동안 20만회 이상의 기상기록을 남겼는데 대기 중 여러 기체들의 구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자설을 만들어냈다.

돌턴은 살아생전에 조각상이 세워진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맨체스터 시민들의 존경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1838년 공공 모금을 통해 돌턴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무려 4만여명이 몰려들었다.

맨체스터대 과학기술연구소의 과학사학자 라지쿠마리 존스 여사는 “맨체스터는 원자설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돌턴의 명성을 잘 활용했다”며 “돌턴 덕분에 맨체스터가 산업혁명의 중심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돌턴 역시 기술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맨체스터의 발전에 기여했다.

돌턴은 과학대중화의 선구자이자 뛰어난 교사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12세 때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맨체스터에 있는 뉴칼리지에서 1800년까지 수학과 자연철학을 강의했으며 뉴칼리지가 요크로 옮겨간 뒤에는 다양한 계층의 학생을 직접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때의 학생들이 커서 법조계 경제계 산업계의 주요 인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도 유명해졌다. 또 수업료를 받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돌턴에 대한 존경심은 나날이 커졌다.

크로토 박사는 돌턴의 선구적인 과학대중화 노력을 칭송하면서 “나도 돌턴처럼 많은 대중 강연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0, 나노 오디세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행사의 첫 강연을 맡았는데 돌턴의 원자설을 바탕으로 오늘날 나노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이 강연은 한 달 전에 조기 마감될 정도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크로토 박사의 강연 장소는 맨체스터 시청. 이곳에서도 돌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돌턴의 조각상이 서 있다. 맞은편에는 그의 제자이며 열역학 제1법칙을 발견한 제임스 줄의 조각상이 있다.

과학자가 한 도시를 상징하는 인물로 선정되는데 전혀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돌턴의 시대보다 과학기술에 많이 의존해 살아가는 오늘날, 과학과 사회가 멀리 떨어져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돌턴의 생애를 곰곰이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박미용 동아사이언스기자 pmi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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