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문홍/이라크 ‘기회의 땅’ 되려면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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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받은 만큼 베풀지는 않았다. 우리가 성숙된 국가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 않은가.”

이달 초 정부 조사단의 일원으로 이라크 현지를 방문했던 한 인사는 “파병은 미국이 아니라 이라크를 돕는 일이며, 다수의 이라크인은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한국의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조사단에 포함됐던 다른 한 인사는 이라크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군이 이라크에서 적극적인 대민활동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는 한편 기업들이 부지런히 뛰면 국제정치적 의미 외에 경제적 효과도 작지 않으리라는 진단이었다.

이라크 추가 파병이 결정된 뒤에도 나라 안이 소란스럽다. 일부 국회의원까지 가세한 파병 불가론이 쉽게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는 일. 앞으로 과제는 정부가 어떻게 국익의 최대치를 창출해내느냐다.

먼저 ‘한미동맹을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논리부터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제기된 찬반양론 모두 파병을 주로 한미동맹과의 맥락에서 따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파병을 하면 당면한 북핵 문제와 주한미군 재배치 등에서 우리의 입장을 강화하는데 유리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뿐일까?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서 세계 제일이라는 칭송을 듣는 캐나다의 예가 참고가 될 수 있다. 군사력이 6만명에 불과한 캐나다는 군내에 PKO 전담 교육센터를 갖고 있고 해마다 PKO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심지어 PKO 전담부대까지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이를 통해 캐나다가 노리는 정책목표는 단 하나,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도 캐나다처럼 이번 파병을 통해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중진국가’의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부각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이야말로 계량화할 수 없는 ‘국익’이다.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챙겨야 할 국익도 많다. 예컨대 파병기간을 1년으로 못박으면 1년 후 미국과 재협상에 임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한층 커질 수 있다. 타국 군대가 공격을 받을 경우 우리 군이 어느 선까지 대응할지 등을 규정하는 교전수칙과 작전규모, 유사시 철군계획 등에 대한 세세한 합의도 있어야 한다. 한편으론 이라크 재건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정부 유관부처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대한석유공사, 기업 등이 모두 참여하는 태스크포스팀도 필요하다.

이라크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 되기 위해서는 대전제가 있다. 바로 국민 여론의 뒷받침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내부는 파병의 당부(當否)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이런 식이라면 이라크는 우리에게 영영 ‘기회의 땅’에서 멀어질지 모른다.

지난봄 이라크에 파견된 우리 장병들은 한국을 떠날 때 쫓기듯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공항까지 따라 나온 파병반대 시위대 때문이었다. 이번에 보내는 우리 장병은 온 국민이 따뜻하게 격려해줬으면 한다. 그들은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세계에 떨쳐 보일 주역이니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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