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美 “마약 잡다 정권 놓치겠네”…주민들 反정부 시위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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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남미 안데스산맥 인근 국가들에서 반정부 움직임이 거세다.

천연가스 수출 계획에 반대해 촉발된 볼리비아 반정부 시위는 현재까지 사망자 74명, 부상자 198명을 내면서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위대는 곤살로 산체스 데로사다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입장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움직임이 한참이고, 에콰도르에서도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파업과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콜롬비아에서는 지난 주말에만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로 17명이 사망했고, 페루에서도 공산반군 ‘빛나는 길’이 다시 세력을 모아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잇따르는 ‘생계형’ 집단 반발은 10여년에 걸쳐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에 기인한다. 민영화, 긴축재정, 경제개방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파이를 키운다’는 목적과 달리 대규모 실업, 복지시스템 붕괴, 빈민층 확대 등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 그러나 이들이 반발하는 더욱 현실적인 이유는 안데스산맥에 자생하는 코카인의 원료 ‘코카’ 잎이다.

선진국의 코카 수요가 폭증하면서 불법 코카 산업은 부패와 폭력, 경제구조 왜곡, 환경 파괴 등 총체적 문제를 몰고 온 ‘괴물’로 변했다.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페루의 ‘빛나는 길’ 등 반군세력은 코카를 경작하거나 코카 경작민에게서 불법 세금을 걷는 방식으로 활동자금을 마련해 왔다.

미국은 코카 밀수를 뿌리 뽑기 위해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에 코카 경작지를 줄이는 조건으로 매년 수십억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지만 코카 재배로 생계를 꾸려온 원주민의 반발을 사 정치 불안만 커졌다.

볼리비아에서는 코카 재배업자 출신의 에보 모랄레스 후보가 2002년 대선에서 21%의 지지를 얻었을 정도로 코카 억제책에 대한 반감이 높다.

세계 코카인 수요의 4분의 3을 공급하는 콜롬비아의 코카 경작지는 미국의 강력한 억제책으로 지난해 다소 줄었다. 하지만 볼리비아와 페루에서는 경작지가 느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팽창한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코카인 수요 자체를 잡지 않는 한 안데스 국가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으며, 코카로 피폐해진 이들 국가의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마약의 주 소비층인 선진국의 지원이 필수라고 충고하고 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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