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에바디, 학대받는 여성-어린이 ‘인권 파수꾼’

  • 입력 2003년 10월 10일 22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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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슬람 신자인걸요. 그러니까 이슬람인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수 있어요.”

그는 이슬람과 여성인권,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수상소감에서 빼놓지 않았다. 이란인으로서, 또 이슬람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

그는 1971년 테헤란대 법대를 졸업하고 74년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됐다. 이듬해부터 79년까지는 테헤란시(市) 법원장도 지냈다. 그러나 79년 이란혁명으로 보수적인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 ‘여성은 재판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며 여성의 법관 임명을 금지해 해직됐다.

이후 망명자, 난민, 여성, 어린이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가로 나서면서 ‘강철로 만든 여성’, ‘이란 여성의 비공식 대변인’ 등의 별명을 얻었다.

▽강철로 만든 여성=98년 11월 반체제 지식인과 작가들이 잇따라 살해되자 피해자 가족의 변호를 맡아 이란 비밀 정보기구의 개혁을 이끌어냈다.

99년에는 개혁 성향 신문의 강제 폐간에 대해 항의하는 테헤란대 학생들의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학생 1명이 숨지자 전말을 밝히려다가 투옥됐다.

2000년 반정부 인사들의 비디오테이프를 배포하다 ‘여론을 교란한다’는 혐의로 체포됐으며 2001년에는 이란 문제에 관한 베를린 국제회의에 참석했다가 투옥됐다.

그는 1999년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인권운동가들은 평생을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데 나는 이런 공포를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란 여성의 비공식 대변인=그는 이슬람법과 여성 및 어린이의 인권을 조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혼과 상속 관련 가족법 개정도 이끌었다.

올해 6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이슬람교가 아니라 가부장적 문화를 문제 삼는 것”이라며 “‘부정한’ 여성에 대한 투석(投石) 형벌은 이슬람 경전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란 어린이 인권 후원협회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2001년 노르웨이 라프토(Rafto) 인권상을 수상했다.

▽이란 강경파에는 가시=에바디씨는 수상자 발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란 내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했다.

외신들은 “에바디씨는 이란 강경파에 가시(thorn)같은 존재였다”며 “그의 평화상 수상은 이란에 당황스러운 것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란 정부는 에바디씨의 수상 소식에 대해 “기쁘다”는 공식 반응을 냈다가 곧바로 취소하는 소동을 벌였다. 이란 국영 TV에서는 수상자 발표 4시간 후에야 단신으로 보도했다.

이 때문에 테헤란의 가족들은 지인들을 통해 수상 소식을 들었다. 남편 자바드 타바솔리안은 “이란의 개혁 성향 인사들에게 오늘은 대단한 날”이라고 기뻐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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