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코헨 아크나인/'집단'속으로 숨는 사람들

  • 입력 2003년 10월 3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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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계율인 미츠바는 모두 613개다. 이를 한 줄로 줄이라고 하면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가 될 것이다. 나는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단군신화의 홍익인간 사상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도덕의 황금률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이웃 사랑을 지구촌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지구촌 인구를 그 비율에 맞춰서 100명으로 줄인다면 57명의 아시아인과 21명의 유럽인, 14명의 미주인, 8명의 아프리카인으로 구성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100명 중 6명이 전 세계 재산의 59%를 갖고 있으며, 80명이 비위생적 주택에 살고 있고, 70명은 글을 읽을 줄 모르며, 50명은 굶주리거나 영양결핍 상태에 있다고 한다. 대학 졸업장을 딴 사람, 컴퓨터를 갖고 있는 사람은 각각 1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어깨 위에 놓인 다른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인류의 고통을 절감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보다 더 아프게 다가오는가.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간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내 나름의 해답은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가족 이웃 국가 그리고 나머지 인류의 순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 모두를 동시에 사랑하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 순서대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신문이나 TV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국인들이 개인적 성취보다는 국가적 성취에서 행복감을 더 찾는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단점을 감추고 싶을 때도 집단 속으로 숨어든다. 이런 현상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여자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화장과 성형수술 뒤에 감춘다. 남자들은 인맥을 만들기 위한 갖가지 ‘모임’의 뒤에 숨는다.

한국인들의 무의식에는 집단적 원형이 강하다. 프랑스 사람 둘이 만나면 느끼는 동질감은 그저 함께 와인을 즐기는 수준이지만 한국인 둘이 만났을 때의 동질감은 함께 김치를 좋아한다는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나는 한국인들의 무의식에 흐르는 이런 강렬한 동질감에 매혹된 사람이다. 그러나 이는 행복 추구라는 측면에서는 일종의 장애로 작용하는 듯하다.

국가대표 축구팀 경기를 볼 때 흥분하는가? 영화 속 멋진 주인공이 난관을 이겨냈을 때 짜릿함을 느끼는가? 내 아이들 성적이 올랐을 때 기쁨을 느끼는가? 그러나 내 주변과 집단의 이런 성취가 내게 안겨주는 행복은 카페인이 주는 순간적 자극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행복은 나 자신의 성취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인들이여 지구촌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아닌 ‘나 자신’부터 사랑하기를. 샤나토바!

▼약력 ▼

1958년 파리 출생의 유대계 프랑스인.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딴 뒤 1981년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에 정착해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무역회사 ‘PCA’를 경영하고 있다. 한국인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

유대 월력으로 지금은 새해 첫달에 해당하며 ‘샤나토바’는 새해 축복을 비는 인사다.

피에르 코헨 아크나인 PCA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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