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 후 2년]<上>끝나지 않은 對테러전쟁

  • 입력 2003년 9월 7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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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항공기 테러로 무너져 내린 지 2년. 이후 미국은 테러 근절을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자국을 따르지 않는 나라를 적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는 더욱 강화됐다. 그러나 미국을 겨냥한 테러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이슬람권의 반미감정은 더 거세졌다. 미국의 독주에 대한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의 반발도 만만찮다. 9·11 이후 2년의 변화를 상하로 나눠 살펴본다.》

5일 이라크 북부의 티크리트에 있는 미 육군 제4보병사단 기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궁이었던 이곳에 아파치 공격용 헬기와 블랙호크 편대가 굉음을 내면서 도착했다.

이어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개선장군처럼 나타났다. 하지만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다음날인 6일 럼즈펠드 장관이 바그다드 공항을 통해 귀국하기 몇 시간 전 미군 수송기 1대가 2기의 SAM 지대공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 미사일은 수송기에 부딪치기 전 폭발했다. 이 사건은 후세인이 아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아프가니스탄 옛 탈레반 정권의 지역수비대장인 굴 라흐만 파루키는 최근 외신기자들에게 “우리가 어디를 가든 주민들이 물과 음식을 주며 반긴다면서 “주민들은 과거 우리를 기피했지만 지금은 미국을 더 싫어한다”고 말했다.

▽두 차례 대(對)테러전쟁과 현재=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 미국이 9·11 테러를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치른 전쟁이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이 9·11 테러 배후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응징이었다면 이라크전쟁은 테러의 배후인 알 카에다를 지원하고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 확산시키고 있는 후세인 세력에 대한 응징이 명분이었다.

미국은 두 차례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올해 3월 이라크전쟁 발발 후 미군 사망자는 7일 현재 282명. 91년 걸프전의 147명과 비교해 거의 두 배에 가깝다.

부상자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최근 하루 10명에 이르며 2일 현재 1124명. 걸프전 당시의 2배를 넘어섰으며 절반이 넘는 574명이 5월 1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종전 선언 이후 다쳤다.

특히 알 카에다가 이라크에 침투해 8월 19일 바그다드 유엔사무소 테러, 8월 29일 나자프의 이맘 알리 사원 테러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 1년9개월이 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80년대 이곳에서 철군한 옛 소련 상황을 재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을 정도다. 지난달 19일 칸다하르에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동생 집이 폭격을 당했다. 이에 앞선 1주일 동안 아프가니스탄 라슈카르 등지에서는 탈레반 잔당의 테러로 89명이 숨졌다.

전문가들은 탈레반 지도자 무하마르 오마르가 세력을 정비해 이미 지역사령부 체제를 갖췄다며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 국면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미군은 현재 아프가니스탄 주둔 국제평화유지군(ISAF) 5300명 외에 1만2500명의 별도 병력을 통해 2년째 척결작전을 벌이고 있지만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곳곳에서 활개 치는 알 카에다=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에서 건재하다고 뉴스위크(8일자)가 최근 전했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 이어 5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8월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테러가 알 카에다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톰 리지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3일 “알 카에다의 최우선 목표는 여전히 미국 본토”라고 말했다.

▽대테러전쟁의 끝은?=이런 상황을 놓고 미국이 군사적 대응으로 과연 세계 곳곳의 테러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 근본적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테러전쟁을 주도하는 미국 내 신보수파 지도자들 역시 군사적 대응만으로는 근절이 힘들다고 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국방연구원 김재두 박사는 “미국은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과 석유자원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며 “9·11 테러는 이 계획을 실행할 구체적인 계기를 제공해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알 카에다의 지속적인 준동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원하던 군사력 실행과 중동 질서 재편의 명분과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며 “이 같은 현실 때문에 대테러전은 쉽사리 종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홍순남 교수(아랍어과)는 “이슬람권의 기층 정서는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저항을 영웅적 성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들의 ‘저항’은 쉽사리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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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태기자 kkt@donga.com

▼9·11테러 2년 뉴요커들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 터(일명 그라운드 제로)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빈다. 5일 오전에도 ‘그라운드 제로’ 동쪽 보도(步道)에는 독일 필리핀 일본 등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철망 너머로 지하공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바로 앞에는 빌딩 붕괴현장에서 발견된 십자가 모양의 철제 빔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북쪽 구석에선 기차역 공사가 한창이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캐나다 유학생 치오드 아돔자(28)는 희생자 2792명의 이름판과 쌍둥이 빌딩의 어제와 오늘을 설명해 놓은 사진들을 유심히 훑어보다가 “현장에 와보니 당시 피해가 생각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면서 “그날 사건은 정말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때마침 ‘9·11 가족연대’라는 희생자 가족단체가 연단을 설치하자 관광객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 단체의 앤서니 가드너는 “WTC 빌딩 터는 유가족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역사유적지”라면서 “기차역 외에 상업시설이나 사무실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한 유가족은 “현장에서 수거된 신체조각 중 1만2000개는 DNA 손상이 심해 신원이 확인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들 조각은 진공포장돼 과학이 더 발달할 미래로 넘겨진다.

새 WTC 빌딩으로는 건축가 대니얼 리베스킨드의 설계안이 채택됐지만 정부, 소유주(항만청), 개발업자, 유가족간의 이견 조정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리베스킨드씨와 개발업자인 래리 실버스타인간의 갈등이 최근 많이 줄었지만 재원 문제까지 해소돼야만 미국이 독립한 해(1776년)를 의미하는 1776피트(541m)짜리 첨탑을 보게 될 것이다.

‘9·11’ 이후 뉴욕 시민들은 폭발음이나 정전, 지하철 운행정지 등 크고 작은 돌발사태가 빚어지면 또 테러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지난해 ‘9·11’ 1주기 때 “용감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지만 시민들의 시선을 끄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마이크 앞에서 “테러가 아니었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미국은 9월 12일을 어떻게 맞이했는가’라는 책을 쓴 스티븐 브릴은 “가끔은 트럭 소리에도 놀란다”고 말했다.

비행기 여행을 꺼리고 공공장소일수록 안전문제를 더 걱정하게 된 것도 ‘9·11’의 산물이다. 최근엔 집에서 요리하고 쉬는 사람이 늘면서 대도시 주변의 ‘파머스 마켓(농산물을 직거래하는 부정기 시장)’이 인기다.

“생활이 바뀌었고 ‘미국이 세계에서 무엇이냐’를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태도 역시 달라졌다”는 한 역사학자의 지적이 실감난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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