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후유증… 佛자존심 ‘폭삭’

  • 입력 2003년 8월 28일 18시 52분


코멘트
《지난 여름은 잔인했다. 최악의 폭염이 휩쓸고 간 유럽 전역에서 1만5000∼2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될 정도. 그중에서도 1만여명의 노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는 프랑스는 각종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왕비의 나무’마저=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사 알랭 바라통은 27일 폭염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떡갈나무’가 고사(枯死)했다고 밝혔다.

베르사유 정원 내 영빈관과 인공호수 사이에 있는 이 나무는 1681년 정원이 조성될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30m 높이의 유서 깊은 고목.

이 나무는 1774∼1776년 루이16세가 대대적으로 정원수를 바꿀 때도 살아남았다.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나무의 그늘 밑에서 쉬기를 좋아했기 때문. 그때부터 이 떡갈나무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나무’로 불렸다.

유력지 르몽드는 이례적으로 1면에 이 나무의 고사 소식을 전하고 프랑스혁명 직후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300년 만에 왕비를 따라간 나무의 죽음을 애도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도대체 어떻게 연장자에 대한 존경보다 바캉스를 신성시하는 가치의 전도가 일어났는가?”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프랑스인들이 노인만 버려둔 채 바캉스를 떠나 노인 피해가 컸던 데 대해 이렇게 개탄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 이번 폭염 피해를 계기로 ‘가족의 의미’를 얘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특히 파리 인근에서만 가족들이 찾아가지 않는 노인 시신 400여구가 방치되자 자성론이 번지고 있다. 일간지 르파리지앵은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제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잊었는가?”라고 물었다. 장 루이 드브레 하원의장은 “유럽에서도 왜 우리만 그렇게 피해가 큰지를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예민해진 총리실=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의 여론담당 보좌관은 26일 프랑스 통신사인 AFP의 베르트랑 에브노 사장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이 보좌관은 “AFP 총리실 출입기자가 쓴 폭염 분석기사에서 사용한 ‘정부의 권력공백’이란 표현은 야당 당수의 표현을 베낀 것”이라며 “언론인의 객관성과 직업윤리를 어긴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에브노 사장은 즉각 반박 서한을 보내 “우리 기자가 기사를 쓰기 전에 이미 르피가로 등 2개 신문이 ‘권력공백’ ‘필요할 때 없는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맞받아쳤다. 폭염 사태로 내정을 총괄하는 라파랭 총리의 책임론이 확산되자 총리실이 언론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