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誌, 在美 아시아계 작가 15인의 ‘고향 여행’ 특집 다뤄

  • 입력 2003년 8월 13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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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입니까?” 이런 간단한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18일)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고향’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짚어보는 ‘아시아로의 여행’을 아시아판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이 잡지는 세계 곳곳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정착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고향은 좋아하는 음식이나 기억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전했다.

이번 특집을 위해 한국계 재미 작가 이창래씨(38·프린스턴대 인문학 및 창작과정 교수)를 비롯해 베드 메타(파키스탄), 하미드 카자이(아프가니스탄), 마 지안(중국) 등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아시아계 작가 15명이 고향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1960년대말 미국으로 떠나기 전 부모와 나들이에 나선 꼬마 이창래(왼쪽)와 두 딸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요즘의 이창래. -사진제공 타임

‘네이티브 스피커’ ‘제스처 라이프’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아온 이씨는 친척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의 귀향을 통해 ‘한국’이라는 범주 속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고 털어 놓는다.

“친척들이 살고 있는 곳이 중요하다. 그러나 혈연이 장소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1989년 봄,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의 묘소를 찾았던 일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잠든 곳을 뒤돌아보며 눈물지었다. 작가는 아버지와 같은 상실감과 슬픔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고향 방문기를 쓰기 위해 5월 방한했다. 경기 고양시에 있는 작은아버지의 집에 머물렀던 그는 숙부와 사촌들과 함께 할아버지 묘소를 다시 찾아갔다. 숙부는 주변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고, 사촌들은 여자친구에게서 온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선조를 찾아뵙는다는 엄숙함보다 소풍을 간 듯한 분위기였다.

작가는 새로 세운 비석을 보고 숙부에게 묻는다.

“묘비에 뭐라고 써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성함.”

거기에는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이름도 새겨져 있었다.

“이렇게 자손들의 이름을 남기는지 몰랐어요.”

“그래.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있지.”

단순한 질문에 단순한 답이었지만 그는 더욱 깊이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들과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를.

그는 이번 한국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공개 강연도 했다. 청중과의 대화 시간에 그는 자신이 청중들과 구별되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촌과 이모, 숙부들의 한가운데로 돌아온 것 같은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강연을 마친 다음날, 작가는 80대 후반의 외할머니를 만났다.

“외할머니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외할머니가 내게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마 지안은 베이징(北京)의 고향 거리로 돌아갔을 때, 시공간을 초월해 영속하는 유일한 고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에게 내재돼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런던에서 본국 미얀마를 생각하는 웬디 로 욘은 ‘고향은 달아나고 싶어 하는 곳이 아닐까’ 하고 넌지시 이야기한다. 판카이 미샤라(인도)는 자신이 찾은 조용한 고향이 어떻게 자기의 일상을 바꿔놓고 있는지를 적어놓았다.

동양문화권에서 고향으로의 회귀는 정신적 안정과 휴먼네트워크의 확인 및 복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서양에서 나고 자란 이민 2, 3세에게는 고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아시아계 이민 2, 3세 작가들은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통해 본격적인 세계화 시대의 한가운데서 ‘기원(起源)’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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