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상표심사 국제분쟁 부른다

  • 입력 2003년 5월 30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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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상표)’에 대한 사용권을 놓고 최근 국내외 업체간 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원조’임을 내세우는 외국업체들은 지적재산권 보호 여론을 등에 업고 강력한 사법권 발동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국내업체들은 자국민의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해 사안별로 판단할 문제라며 맞서고 있는 것.

▽실태=서울 강남구 논현동 ‘씨네하우스’ 극장 빌딩에는 극장을 철거하는 대신 ‘미스터 차우’라는 3층 규모의 대형 중식당이 올해 말 문을 열 계획이다. 그러나 ‘미스터 차우’는 이미 수년 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과 광화문 부근 등에 점포를 성공리에 낸 바 있다.

새로 들어설 식당은 미국에서 34년간 영업을 한 미국인 마이클 차우가 갖고 있는 ‘미스터차우엔터프라이즈’에서 프랜차이즈 계약을 내 준 사업체이고, 이미 영업 중인 식당들은 한국인 사장이 동명(同名)의 상호를 사용 중인 국내 업체다.

국내 업체에서는 2001년 6월 특허청에 상표권 등록을 신청했으나 상표법에 따른 1차 심사에서 미국 업체측의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졌다. ‘국내외에서 주지(周知) 저명한 상표이므로 등록을 거절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 그러나 2차 심사에서는 ‘국내에서도 주지 저명한 상표인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재심사를 받게 됐다.

미국 업체측은 “혹시라도 한국 진출 시 이름을 바꿔야 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며, 국내 업체측은 “차우는 중국계 미국인 사이에서는 흔한 성(姓)이며, 국내인들에게 유명치 않았던 상표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미국 ‘미스터 차우’는 특허청의 상표권 심사 결과에 따라 자신의 브랜드를 한국에서 쓰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셈.

최근에는 서울 강남 일대 병원들도 해외의 유명한 ‘브랜드 병원’ 간판을 프랜차이즈 계약 없이 내건 경우가 있지만 이들도 “국내에는 해외 병원들의 인지도가 없어 문제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상표등록출원건수는 2000년 11만73건에 비해 2002년 10만7873건으로 소폭 줄었으나 상표권 분쟁으로 인한 심판청구건수는 같은 기간 2787건에서 3675건으로 오히려 크게 늘었다.

상표법위반이나 부당경쟁행위로 인한 법적소송도 증가 추세다. 서울지방법원의 경우 지난해 180여건의 소송을 진행했으며, 올해부터는 전담부서도 민사12부 1개에서 2개부(민사13부)로 확대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보안업체 ‘세콤’(한국법인 에스원)이 한국의 낚시받침대 판매회사 ‘세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 인정돼 한국 업체로부터 사과광고를 받았다. 루이뷔통, 카르티에 등 해외 유수의 명품 제조업체들도 6월 초부터 열리는 국내 상표도용업체에 대한 재판에 원고로 참석한다.

국내의 상표도용업체들은 최근 상표 뿐 아니라 브랜드만의 고유한 문양이나 디자인을 ‘의장등록’하는 방법으로 사법처리를 피하려 하기도 한다. 의장등록은 상표와 달리 결격사유가 없으면 대부분 특허청에서 등록을 허가하기 때문.

▽전문가 의견= 법무법인 대륙의 이용구(李容求) 변호사는 “외국체류 경험자들이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해외 유명 브랜드를 무단으로 등록하거나 교묘하게 편법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법부에서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지원 민사12부 조관행(趙寬行) 부장판사는 “국내 영세업체는 외국 업체의 상표를 도용하더라도 실제로 이득을 크게 낸 경우는 많지 않아 손해배상도 원고의 기대수준에 못 미치는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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