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치운명 모래폭풍에 휩싸였다"

  • 입력 2003년 3월 30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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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11일째. 모래폭풍에 휩싸인 미영국군의 바그다드 진격로만 시계(視界)가 불투명해진 것이 아니다. 숙적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대(代)를 이어' 전쟁을 벌이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앞날도 갈수록 험난해 보인다. 정치생명을 건 부시 대통령과 역시 목숨을 내건 후세인의 팽팽한 싸움은 자칫 '승자 없는 전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부시 비판으로 돌아선 미 언론=미국 최고의 권위지인 뉴욕 타임스는 30일 '부시의 곤경'이란 분석기사에서 터키 정부의 허락을 받지 못해 개전 후 이라크 북부전선에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하지 못한 점을 외교적 대실패로 지적했다.

신문은 또 △바스라와 나시리야 등 남부 전략요충을 우회할 수 있고 △남부의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이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에 반기를 들 것이란 애초의 전술적 판단도 오류였음이 드러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사주간지 뉴요커도 미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빌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전쟁을 준비하면서 6차례 이상 군에서 건의한 병력 증원을 묵살했으며 이 때문에 뒤늦게 군대를 보내는 등 혼란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미 언론이 전쟁 와중에 전쟁지도부의 오류를 들춰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흔들리는 여론=미 여론도 '총론엔 찬성, 각론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ABC방송이 지난주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설문대상자의 4분의 3은 전쟁을 지지했고 70% 정도는 '대통령이 이라크를 잘 다루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설문자 3명 중 2명이 미국이 아닌 유엔이 이라크 전후처리에 나서야 한다고 밝혀 원유사업권 등 전쟁과실을 독점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걸림돌로 나타났다. 또 과반수 이상이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감세안을 대폭 삭감한 상원의 조치를 환영, 전후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시도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여론이 확산되면 부시 대통령 역시 전쟁에 이기고도 재선에 실패한 아버지(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따를 공산이 커진다.

▽전쟁회의론 커진다=부시 대통령이 내건 개전명분은 대량살상무기 제거 및 후세인 독재에서 신음하는 이라크국민의 해방. 이는 최종적으로 후세인 제거와 친미정권 수립으로 달성할 수 있는 전략적인 목표다.

그러나 후세인 대통령은 변칙적인 전술과 아랍계 언론을 활용한 미디어전으로 '아랍세계의 영웅'으로 부상하고 있고 반미적인 아랍계 민족주의 성향은 더욱 드세지고 있다. 전황과 국제정세가 미국의 목표치와 점차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량살상무기 색출작업이 진전이 없는 가운데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면서 서방 등 국제여론도 더욱 냉소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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