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전 '피의 역사']1945년 比 마닐라전투 희생자11만 넘어

  • 입력 2003년 3월 27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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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프와 바그다드에서 이라크군과 시민들이 결사 항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영 연합군에 ‘시가전의 공포’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골목 골목(house to house)에서 맨 투 맨(man to man)으로, 주로 재래식 무기를 갖고 싸우게 되는 시가전에서는 미군의 초현대식 첨단무기의 위력도 믿을 만하지 못하다. 지난해 9월 미 국방부가 발표한 ‘시가전 합동작전을 위한 원칙’이라는 보고서에서도 “도시에서의 군사작전 중 지상 전투는 가장 어렵고 큰 비용을 수반하는 종류의 작전”이라고 밝혔다.

역사상 시가전은 공격측에 큰 피해를, 방어측에 더 큰 피해, 그리고 민간인에게는 더욱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1945년 연합군이 일본군으로부터 필리핀의 마닐라를 탈환했을 때, 1000명이 넘는 미군과 1만6665명의 일본군이 사망했다. 민간인 희생자는 10만명. 마닐라 주민 10명당 1명꼴로 사망했다. 지칠 대로 지치고 사기도 꺾인 일본군을 상대로 한 전투였는데도 이 정도의 피해를 낸 것.

1989년 파나마의 독재자 마뉴엘 노리에가를 축출하기 위한 공격에서도 미군 26명, 민간인 202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3년 소말리아에서는 채 하루도 안 되는 시가전에서 미군 18명과 소말리아인 1000여명이 사망했다.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반전여론 등을 증폭시켜 결국은 실패한 전략이 될 가능성도 미영 연합군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1942∼43년 나치는 소련의 스탈린그라드를 6개월에 걸쳐 침공했다. 총 사망자는 150만명. 결국에는 스탈린그라드 점령에 실패했다. 1968년 베트남의 후에 전투에서 미 해병대 400명을 포함해 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미국내 여론이 ‘반전’으로 급속히 돌아 서 미국은 정책을 수정해야만 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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