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사망 50주년]러 功過논쟁 후끈

  • 입력 2003년 3월 3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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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은 구 소련의 독재자 이오세프 스탈린이 사망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 이날을 맞아 그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쟁이 러시아 사회를 후끈 달구고 있다. 그가 ‘제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구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강력하고 위대한 지도자’라는 맹목적 찬사와 ‘수백만명의 무고한 국민을 숙청한 무자비한 독재자’라는 혹독한 비난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러시아 여론조사 기관인 여론재단(FOM)이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37%의 응답자가 ‘스탈린이 국가를 위해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대답해 부정적 답변(29%)보다 많았다.

반면 그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항목에서는 42%가 기아, 테러, 탄압, 강제노동수용소(굴락) 등 부정적 단어를 떠올려 2차대전 승리와 질서확립, 산업화 등 긍정적 이미지를 연상한 32%보다 많았다.

여전히 그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애증이 엇갈리고 있음을 보여준 것. 고향인 그루지야 등에서 성대한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이고 러시아 공산당 등 좌파는 그의 업적을 찬양하는 성명을 냈지만 러시아 당국은 공식적인 평가를 삼가고 있다.

스탈린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철권 통치로 내전 후의 혼란을 종식했으며 공업화를 통해 소련을 산업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집권 중 2000만명이 숙청됐고 그 중 최대 10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후인 1956년 제20차 공산당대회에서 후계자인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비판한 뒤 1961년 붉은광장의 레닌 묘에 묻혀 있던 시신이 크렘린궁 성벽 아래로 옮겨지는 등 격하됐던 스탈린의 위상은 최근 급격히 높아졌다. 소련 해체 후 혼란한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좌절과 초강대국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 등이 민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인권단체인 메모리알(기억)의 올레그 오를로프 대표는 “구 소련 비밀경찰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뒤 위대한 조국과 질서 등 스탈린과 비슷한 구호를 내거는 등의 정치상황이 스탈린에 대한 추모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며 우려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스탈린 두 손자의 엇갈린 삶▼

스탈린 후손들의 삶도 엇갈리고 있다.

두 손자 중 한 명은 평생 할아버지와 전혀 상관없이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할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스탈린이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바실리의 아들인 알렉산드르 부르돈스키(61)는 할아버지의 성(姓)인 드주가슈빌리까지 버리고 어머니 갈리나의 성을 이어받을 정도로 할아버지와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

연극인으로 현재 모스크바 붉은군대극장의 프로듀서인 그는 “할아버지와 관련된 기념일에 기자들이 찾아올 때 외에는 할아버지를 의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스탈린이 첫 결혼에서 얻은 아들 야코프의 아들인 예브게니 드주가슈빌리(67)는 ‘당당히’ 할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았다.

군수산업체 출신의 그는 할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1999년 러시아 총선에 볼셰비키 정당을 이끌고 나섰으나 낙선은 물론 당이 1석도 얻지 못하는 참패를 겪었다. 그 후 할아버지의 고향인 그루지야로 옮겨 대선에 출마했으나 또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현재 그루지야에서 신(新)공산당을 이끌고 있는 그는 “할아버지는 내 자부심의 원천”이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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